우한으로부터의 탈출
우한으로부터의 탈출
  • 문틈 시인
  • 승인 2020.01.2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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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은 중국에서 겨울이 길고 가장 추운 도시다. 도시 이름을 장춘이라 한 것은 봄이 길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붙여진 이름이다. 가장 추운 절기를 우리가 소한이라고 부르듯이. 그 장춘을 국공 내전 때 모택동군이 1948년 5월에서 10월까지 완전 포위했다.

30만명이 넘는 시민과 함께 10만명의 장개석군이 굶어 죽고 나서야 포위전이 끝났다. 그때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던 주민들은 말, 개, 고양이 쥐, 새를 잡아먹었다고 한다. 끔찍한 내전 중에 일어난 흑역사다.

지금 중국 우한시는 폐렴의 확산을 막기 위해 1천1백만명의 거대 도시를 완전 봉쇄했다. 한 사람도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없고 도시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중국 역사상 처음 있는 조치다.

평화 시기에 거대도시를 봉쇄하다니 초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인적이 없는 도심의 풍경 사진이 공포심을 자아낸다. 우한 폐렴을 중국 정부는 그만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증거다. 중국 정부가 생필품 공급은 물론 방역과 치료에 만전을 기하고 있어 동요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한데 이미 봉쇄 조치 전에 우한을 빠져나간 사람들이 5백만에 달한다고 하니 늦은 감이 있다. 그 중 6천여 명이 한국으로 왔다고 한다. 중국의 각 도시는 물론 인근 나라들, 중국인이 왕래하는 전 세계가 떨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한에서 온 중국인, 그곳에 들렀다 온 한국인 중에 국내에서 폐렴 확진자가 나타났다. 국내에 2차 감염자까지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국면이다. 우한서 온 한 사람은 귀국 때 아무런 증세가 없어서 서울 일원을 일보러 돌아다녔다.

닷새가 지나서야 증세가 나타나 지정병원에 입원중이다. 병원, 호텔, 식당, 편의점, 약국, 마트 등 그 한 사람이 돌아다닌 동선에 있던 70명 가까운 사람들을 찾아내 당국이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역시 우한에서 온 다른 한 사람은 평택 일원을 여기저기 돌아다닌 후에야 우한 폐렴 확진자로 진단되었다. 지난 12월에서 올해 1월 사이에 우한시를 다녀온 사람은 죄다 신고토록 해서 선제 방어를 해야 하지 않을까.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다. 내가 어린 시절 한때 병 치료차 요양소에 있을 적에 한 청년이 가슴을 치면서 소리를 질러대던 일이 생각난다. 6개월 이상 요양소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선고에 분통이 터진 것이다.

“뭐야, 보이지도 않는 균한테 내가 질 수가 있어요? 그놈의 균들을 보여줘요. 내가 싹 죽여줄 테니까.”

청년의 분노에 치민 그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미세먼지보다 훨씬 작다. 현미경으로 보아야 겨우 보인다. 소매치기를 일격에 때려눕혔다는 무용담을 자랑하던 그 청년은 눈에 안보이는 균 같은 것에 자기가 꼼짝 못한다는 사실에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개미는 손가락 하나로 죽일 수 있는데 개미보다 작은 눈에 안보이는 그 균이라는 놈이 피가 끓는 청년을 요양소에 처박아두다니. 생각해보면 청년의 외침소리는 틀린 말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는 청년이 분노를 터뜨린 ‘안보이는 균’과의 싸움이라고 할 정도로 균은 인류문명사를 바꾸기도 했다. 몽골의 징기스칸 군대가 14세기 유럽을 침략했을 때 함께 간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어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2천4백만명이 죽은 일도 있다.

21세기는 의술과 사람들의 인지가 발달해서 그 정도로까지 가는 일은 없겠지만 이번 우한 폐렴은 지난 번 우리가 겪었던 사스나 메르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균은 다른 사람으로 건너갈 때 변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아주 고약한 균이다. 특별한 치료방법도 없고 사망률이 3퍼센트에 이른다.

책에서 보았는데 바이러스는 지구가 생긴 지 5억년 후에 나타났다고 한다. 모든 생명체 중 가장 먼저 등장한 셈이다. 인류가 지상에 나타난 것은 유인원을 기준으로 아무리 길게 잡아봤자 6백만 년을 넘어가지 않는다.

대체 세균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무엇을 먹고 살까. 어떻게 번식할까. 세균의 생태에 관해서 우리는 모르는 바가 너무 많다. 60킬로그램의 몸무게를 가진 사람의 신체 중 1.5킬로그램이 몸 안에 있는 각종 세균의 무게의 합이라고 한다. 우리는 심하게 말하면 살아 있는 ‘균 창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익균이든 해로운 균이든 균과 공생하며 살고 있다.

답은 이렇다. 우한 폐렴으로부터 안심하려면 가급적 밖에 나가지 말고 나갈 땐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하고 손을 잘 씻는 방법밖에 없다. 중국정부는 지금 ‘집에 있는 게 애국’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나는 천식이 있는 데다 겁이 많아 며칠째 아파트 단지를 돌고 들어오는 것 말고는 거의 집에서 나가지 않고 있다. 미세먼지에다 우한 폐렴이라니….자연인이 부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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