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노래가 슬픔을 치유할까
슬픈 노래가 슬픔을 치유할까
  • 문틈 시인
  • 승인 2020.01.28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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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슬픈 노래를 더 좋아한다. 왜일까. 그것은 슬픈 노래가 마음을 위로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슬픈 노래를 들으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정감을 느낀다. 사람들은 슬픈 노래뿐만 아니라 슬픈 소설, 슬픈 영화, 슬픈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슬픈 음악의 매력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음악을 듣는 것이 슬픔이나 상실을 겪는 사람들에게 치료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친구나 가족이 대화를 나누며 위로를 해주고 어깨에 손을 울려 줄 수는 있지만 이별의 노래에서 더 깊은 위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슬픈 노래, 영화 또는 다른 예술 작품은 사람의 마음에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슬픈 노래와 책과 영화는 슬픔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주고 즐거움을 준다는 말도 한다. 슬픔이 즐거움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야기다.

얼른 이해가 안 가는 말 같지만 슬픈 노래나 영화, 소설이 마음을 평안하게 하여 치유해준다는 말인 것 같다. 슬픔이 슬픔을 위로한다니. 생각할수록 맞는 말인 것 같다. 베토벤이 “내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은 내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통을 겪은 사람의 음악이 타인의 고통을 치유해준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법하다. 슬픈 자극이 슬픔을 줄여준다는 뜻이다.

특히 우울한 사람들이나 세상살이가 잘 풀리지 아니하여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들은 종종 슬픈 음악 같은 ‘슬픈 자극’에 더 이끌린다. 사람들이 슬픈 노래를 좋아하는 까닭을 알 것만 같다. 인생은 살다 보면 결국 한바탕 슬픈 이야기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슬픈 노래를 자주 부르는 가수는 오히려 슬픔에 늘 감정이 이입되어 있어 나중에는 슬픈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설도 있다. 이건 연구결과는 아니지만 어떤 가수가 슬픈 노래를 히트해서 수년 동안 그 노래를 수백, 수천 번 대중 앞에서 부르게 되었는데 나중에 그 가수는 노래처럼 슬픔에 빠져서 삶이 무너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니까 슬픈 자극을 생산하는 자보다는 슬픔을 향유하는 자에게 위안을 제공해준다는 말이다.

슬픈 자극은 대개 영혼을 고양시키는 예술작품에 내장되어 있다. 이와는 달리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슬픈 자극은 우리를 더 슬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 같다. 최근 생활고에 일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자주 본다.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어찌할 수 없는 슬픔에 분노와 동정 같은 감정을 격하게 느낀다. 무엇인가 내가 크게 잘못한 것처럼 마음이 고통스럽다. 이런 경우 우리 모두는 집단 죄의식 같은 것을 느껴야 마땅한 일이 아닌지 모르겠다.

한 가족이 극단의 선택을 했는데도 그 비극은 그 가족에 그치고 만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연대감이 우리 사회에는 부족한 듯싶다. 영미권 나라의 경우를 보면 개인주의가 성한 나라들인데도 어떤 비극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 슬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함께 한다.

다뉴브 강에서 선박 사고로 우리 국민이 희생되는 사고가 났을 때 그 나라 사람들이 강가에 조화를 놓고 애도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일가족의 비극, 생활고로 인한 극단적인 선택 등 이웃의 불행에 연대하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치가 할 일이 아닐까. 내가 따뜻한 방에서 음악을 듣고 있을 때 창 밖에서는 추위에 떨며 헤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사회와 연대하는 일이다.

정부는 45퍼센트의 가구에 복지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 어느 정부도 이처럼 국민의 삶을 책임지려는 정부는 없었다. 하지만 일가족 자살 같은 극단의 생명권 포기 같은 데는 그닥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비극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연대감’을 표시하여 그들에게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는 마음을 갖게 해준다면 진짜로 ‘사람이 먼저다’를 실현하는 나라가 되지 않을까.

며칠 전 아내가 ‘교회 오빠’라는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영화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나는 이 실화 이야기를 듣는 내내 눈물이 나와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슬픈 자극은 너무나 슬퍼서 오래도록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슬픔이 슬픔을 위로하는 일은 슬픈 노래, 슬픈 영화, 슬픈 소설 같은 슬픔이 한번 여과된 예술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인 듯싶다. 셰익스피어는 ‘인생이란 슬픔과 기쁨으로 짜여진 실가닥’이라고 했다. ‘황성옛터에 밤이 드니 월색만 고요해…’ 남인수의 노래가 듣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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