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체제’ 한일관계에서의 ‘한일친선’이란 위선(僞善)
‘65년 체제’ 한일관계에서의 ‘한일친선’이란 위선(僞善)
  • 박순애 호남대초빙교수
  • 승인 2020.01.08 2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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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대초빙교수 박순애
호남대초빙교수 박순애

많은 평론들이 최근의 한일관계를 논할 때 일본의 표변한 태도에는 강제징용 배상문제의 대법원판결이나 위안부문제 협정 파기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으며 현 정부의 대일외교에 대한 잘못된 대처방법을 꼬집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한국 때리기는 뿌리 깊은 한국경시에서 비롯되었으며 일본의 대한(對韓)수출금지 제재의 본질은 한국의 부상이 그 원인이다. 강제징용 배상문제는 일종의 핑계이고 아베정권이 국내정치에 이용하고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렇듯 일본이 신경질적으로 한국을 견제하고 있는 데에는 한국의 부상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일본의 속성 때문이다. 게다가 2019년에는 북핵문제를 둘러싼 한미, 북미, 남북간 사이가 해빙무드로 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일본이 끼어 들 틈이 보이지 않자 일본의 초조함이 초계기사건이나 수출금지조치로 한국을 흔들어대고 있는 것이다. 아베정권은 그냥 해보는 것이 아니고 트럼프정권을 이용하면서 치밀한 계산으로 한국 때리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65년 체제’ 한일관계에서의 ‘한일친선’이란 케치프레이즈는 위선이다. 어느 한 쪽의 득실을 말하기보다는 한일 양국의 정치프로파간다였으며 필요에 따라 ‘한일친선’을 적절히 이용하여 왔을 뿐이다.

오래된 100년전, 2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전후 일본인의 한국관은 1951년9월 샌프란시스코 미일강화조약회의가 개최되기 직전의 일본인의 대외인식조사에서 살필 수 있다. 일본인의 49%가 좋아하는 민족은 미국인이었고 16개 민족 중 조선인은 2%만 ‘좋다’이고 15위였다(16위는 ‘니그로인’이 최하위였지만 ‘니그로인’이란 민족은 없는데 이 조사에서는 사용되었다). 44%가 싫어하는 민족은 조선인이며 가장 싫어하는 민족으로 ‘한민족’을 꼽은 것이다.

이러한 일본인의 혐한(嫌韓)경향은 1961년까지 지속(41%)된 후 1962년 이후부터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 65년에는 24%로 떨어졌다가 이듬해 66년에는 30%로 다시 오른다. 일본이 선진국 대열에 오르게 되는 70년대 초반에 일본국내의 비싼 임금 때문에 일본기업의 해외진출 첫 번째로 한국이 그 대상이 되면서 10%대로 잠시 떨어지기도 하였지만 74년이후 다시 20%대 이상으로 상승하기 시작한다.

더욱 깊게 들여다보면 혐한보다 높은 ‘무관심’이 40%이상 50%가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무관심은 관심이 없다는 의미라고 보기 쉽지만 무시하고 있는 숫자이다. 싫다와 무관심을 합치면 50%이상이고 많을 땐 80%이상이 혐한 또는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혐한과 비교하면 그렇게 긍정적으로 변한 것 같지 않다. 아니 부정적으로 변한 것도 아니다.

전후 한일간 현안은 다양할 뿐 아니라 해결된 문제들이 거의 없다. 나열해보면 평화선(일본에서는 이승만라인 또는 리라인이라 칭함), 독도문제, 재일교포 법적지위문제, 청구권문제, 사할린잔류교포문제, 원폭피해자 문제, 80년대 이후부터 일본역사교과서 왜곡문제가 더해졌고, 일본군위안부문제, 강제징용문제, 김대중대통령이 일본대중문화 전면 개방으로 오부치선언을 이끌어냈지만 1997년 IMF문제로 인하여 한일경제수역EEZ 협정을 가져왔으나 오히려 독도문제의 미해결 고착상태 심화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일본의 수출금지 조치로 경제보복이 더해지면서 한일간 현안이 더욱 늘어나기만 하고 있다. 일본은 작금의 한일현안들을 해결할 의지가 없다.

오늘도 일본에서는 ‘조센진 가에레(조선인은 돌아가라)’라는 혐한구호가 울려 퍼지고 있다. 냉전시대에 요시다수상은 재일조선인을 전원 송환하기 위해 조선인은 공산주의자 또는 공산주의 동조자라고 미 점령군에게 송환탄원서를 제출하여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미국을 꼬여 그 틈을 파고 들었다. ‘쇼와의 요괴(昭和の妖怪)’라고 칭했던 기시(岸信介)수상은 1959년부터 일본에 살고 있던 한민족을 10만명 넘게 북송선을 태웠고 그 결과 남한과 북한 그리고 일본 3국으로 갈라진 이산가족을 증산시켰다. 기시는 현 아베수상의 할아버지이다.

일반적으로 갈등을 푸는 것은 사랑과 용서이고 여기에는 상대방의 회개와 반성이 전제되어야한다. 그러나 한일관계는 화해하고 포용하는 관계가 아니다. 한일간 갈등 치유를 위한 도덕적 행위를 일본에 기대할 수 없다.

최근 한일관계의 본질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한다. 한국의 정치와 경제는 더욱 발전해야하고 문화적 성숙과 고도화도 더욱 요구된다. 문재인정부는 대일 대항의 끈을 계속 팽팽하게 유지해야하고 민간인들의 긴장도 당분간 계속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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