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함만이 가득 담긴 졸업사진
어색함만이 가득 담긴 졸업사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6.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졸업사진 찍는대. 마담뚜들이 앨범 사진 들고 다니는 거 알지?"
졸업사진 촬영날짜가 다가오면서 친구들끼리 나누는 주대화 내용이다. 남녀구분 없이 휴학이 필수가 되어버린 요즘 동기들끼리 모두 졸업앨범 찍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이 앨범은 우리의 대학시절을 추억하기보단 일명 '마담뚜'들의 소지품이 되어버린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졸업사진 찍는다는 말에 "메이크업, 머리 어디서 하지?" "이번주 백화점 가서 정장 한벌 사야겠다"며 마음부터 바빠진다.
학교 앞 미용실은 매일 아침 졸업사진을 위해 들르는 학생들로 장사진을 이루기도 한다. 그 안에 물론 나도 포함되어 있다.
메이크업과 머리 손질 하는데 보통 3만원에서 5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게다가 옷과 신발까지 장만하다보면 30만원 정도 소요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평소엔 머리도 대충 묶고 수업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오늘만큼은 왠지 여성스럽고 우아하게 연출해야 할 것 같아서 미용사 언니에게 웨이브를 넣어 달라고 주문한다.
화장 또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메이크업베이스, 파운데이션, 푸아더, 아이라이너, 쉐도우, 마스카라, 볼 터치, 립글로스까지 완벽한 신부화장이 내 얼굴을 감싼다.

더욱 재밌는 사실은 촬영장에서 만난 친구들의 모습이 하나 같이 똑같다는 것이다.
유행하는 정장에, 머리모양, 화장까지 서로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로 화사했다.
누군가 졸업사진 찍을 땐 정장입고 머리도 신경 좀 쓰고 찍으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들은 일제히 미용실로 발길을 옮긴다. 그리고 학생들은 '사진이 잘 나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단함과 경제적인 지출을 감수한다.

왜 졸업사진 찍는 시즌만 되면 4학년 학생들은 다들 똑같은 모습이 되는 걸까? 그것이 전통일까?
대학교 졸업앨범은 대학시절을 추억하기 위해 만드는 것 아닌가. 그러면 내가 평소에 등하교 하던 그대로의 모습을 추억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울텐데. 평소처럼 청바지, 반바지에 티셔츠 하나 걸치고 다니는 모습을 추억해야 할텐데 졸업 앨범 속 대학시절 모습은 정장에 신부화장, 사자머리로 가득하다.

졸업사진 찍으면서 느낀 점 또 하나는 너무 많은 자원이 여기에 쏟아 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피사체를 위한 피사체가 되고 사진을 위한 사진을 찍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물론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만큼 졸업사진 문화에 대한 생각도 각자 다르겠지만 떨어진 눈썹 찾으러 다니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좀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찍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1년전 졸업사진 찍는 선배들을 보며 친구와 이런 대화를 했었다. 우린 비싼 돈 주고 저렇게 찍지 말고 사진기 하나 들고 교정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우리만의 앨범을 만들어 보자고. 하지만 결국 나도 선배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