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 17회 정약용, 전간기사(田間紀事) 6수를 짓다.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 17회 정약용, 전간기사(田間紀事) 6수를 짓다.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청렴연수원 청렴강사
  • 승인 2019.12.2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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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에 다산 정약용은 전간기사(田間紀事) 6편을 지었다. 즉 다북쑥, 뽑히는 모, 메밀, 보리죽, 승냥이와 이리, 오누이 시이다.

전간기사 6편에는 다산의 서문이 적혀 있다.
 
"기사년(1809년)에 나는 다산초당에 머물고 있었다. 이 해에 큰 가뭄이 들어 지난 해 겨울부터 봄을 거쳐 금년 입추에 이르기까지 들에는 푸른 풀 한 포기 없이 그야말로 붉은 땅이 천리에 연했다. 6월초가 되자  유랑민들이 길을 메워 6월 초가 되자 유랑민들이 길을 메우기 시작했는데 마음이 아프고 보기에 처참하여 살고 싶은 의욕이 없을 정도였다. 죄를 짓고 귀양살이 온 이 몸으로서는 사람 축에 끼지도 못하기에 오매초(烏昧草)에 관하여 아뢸 길이 없고, 은대(銀臺)의 그림 한 장도 바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때그때 본 것들을 시가(詩歌)로 엮어보았는데, 그것은 처량한 쓰르라미나 귀뚜라미가 풀밭에서 슬피 우는 것과 같은 시들이지만,  그들과 함께 울면서 올바른 이성과 감정으로 천지의 화기(和氣)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오래 써 모은 것이 몇 편 되기에 이름 하여 ‘전간기사(田間紀事)’라 하였다.”

여기에서 오매초는 고사리의 이칭(異稱)이다. 송나라의 범중엄이 강회(江淮) 지대를 안무시키고 돌아와서 가난한 백성들이 먹고 있는 오매초를 올리면서, 그것을 육궁(六宮)의 척리(戚里)들에게 보임으로써 사치를 억제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은대(銀臺 : 신선이 사는 곳)는 《후한서》 장형전(張衡傳)에, “왕모(王母)를 은대에서 보았더니 옥지(玉芝)를 먹으며 굶주린 배를 채우네."에 나온다. 하였다. 그리고 보니 오매초와 은대의 그림 모두가 굶주림의 상징이다.
 

실학박물관(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유적지)

그러면 전간기사 제1수 ‘다북쑥 (채호 釆蒿)을 음미해보자.

다산은 이렇게 적었다. 원주(原註)에 나온다.

“다북쑥은 흉년을 슬퍼한 시다. 가을이 되기도 전에 기근이 들어 들에 푸른 싹이라곤 없었으므로 아낙들이 쑥을 캐어다 죽을 쑤어 그것으로 끼니를 때웠다.”

다북쑥을 캐네. 다북쑥을 캐네. 
다북쑥이 아니라 새발쑥이네.    

양떼처럼 떼를 지어           
저 산등성이 오르니          

푸른 치마에 구부정한 자세      
붉은 머리 숙이고              

무엇에 쓰려고 쑥을 캘까         
눈물만 쏟아지네.              

쌀독엔 쌀 한 톨 없고            
들에도 풀싹 하나 없는데      

다북쑥만이 자라서               
무더기를 이뤘기에             

말리고 또 말리고           
데치고 소금 절여          


된 죽 묽은 죽 쑤어 먹지
달리 또 무엇하리.       

쌀 한 톨 없어서 다북쑥으로 죽 써 먹는 백성들, 참으로 불쌍하다.

다북쑥을 캐네. 다북쑥을 캐네.    
다북쑥이 아니라 제비쑥이네.      

명아주도 비름나물 다 시들었고     
자귀나물은 떡잎은 나지도 않아    

풀도 나무도 다 타고
샘물까지도 말랐네.

논에도 우렁이 없고
바다엔 조개도 없다네.

높은 분네들 살펴보지도 않고
기근이다 기근이다 말만 하면서

가을이면 다 죽을 판인데
봄이 와야 구휼이네

이렇게 민생 현장을 살피지도 않고 말로만 하는 관료들. 지금은 어떤가?

유랑 걸식 떠난 남편
그 누가 묻어줄까

오호라 하늘이여
어찌 그리도 무정하시나이까.

백성들은 하늘도 무정하다고 한탄한다.

다북쑥을 캐네. 다북쑥을 캐네.
캐다가 보면 들쑥도 캐고

캐다가 보면 쑥 비슷한 것도 캐고
캐다가 보면 다북쑥을 캐네.

푸른 쑥이랑 흰 쑥이랑
미나리 싹까지

무엇을 가릴 것인가
모두 캐도 모자란데

그것을 뽑고 뽑아
바구니에 쓸어 담고

돌아와서 죽을 쑤니
아귀다툼 벌어졌네.

형제간에 서로 뺏어
온 집안이 떠들썩하네.

서로 원망하고 욕하는 꼴들이
마치 올빼미들 같네.

여기서 올빼미란 아귀다툼하는 간악한 사람을 비유한다. 하기야 배고프면 나만 살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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