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52) 용성(龍城)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52) 용성(龍城)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12.1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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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도 태평하니 이를 치하한다오


전쟁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지속된다. 대낮의 전쟁보다는 한 밤 중의 전쟁이 적진을 괴롭히는데 좋았다. 특히 온 대지가 포근하게 잠 들어있는 새벽녘에 기습으로 몰아치는 전쟁은 성과를 거양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6‧25전쟁의 기습 공격을 생각하면 이런 분위기를 잘 그려낼 수 있을 것 같다. 대낮의 전쟁은 저녁 무렵 국경(萬里)엔 조용하여 아직도 전쟁할 기미가 없어 보이니 오랑캐도 이런 때의 태평함을 알고 치하한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龍城(용성) / 고려 태조 왕건

흉노족의 본거지에 가을 해 늦으니
수루에는 연기 피어 쓸쓸히 오르고
국경에 기미 없으니 태평함을 극찬하네.

龍城秋日晩       古戍寒烟生
용성추일만      고수한연생
萬里無金革       胡兒賀太平
만리무금혁      호아하태평


이런 때 오랑캐도 태평하니 이를 치하한다오(龍城)로 번역해 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877~943)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흉노족의 본거지인 용성의 가을 해가 늦으니 / 오래된 수루에는 쓸쓸한 연기가 피어오르는구나 // 국경(萬里)엔 조용하여 아직도 전쟁할 기미가 없어 보이니 / 오랑캐도 (이런 때는) 태평함을 알고 치하한다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용성을 바라보면서]로 번역된다. 용성은 흉노족의 우두머리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을 이르던 말로 쓰이기도 하고, 흉노족의 본거지였던 지금의 외몽골 지역에 있었다고 전한다. 고려를 창건하기 위해 북방 오랑캐 흉노족과 한 판 싸움을 눈앞에 두고 있는 처지라는 시적인 배경을 앞에 놓인다.
시인은 뺏고 빼앗기는 한판 승부가 목전에 있음을 상기하는 모습을 본다. 고려를 창건하기 위해 늘 위험세력이 되고 있는 흉노족이란 오랑캐를 처부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시인은 흉노족의 본거지인 용성의 가을 해가 바라보니 늦은 가을을 재촉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가운데 저 멀리 오래된 수루에는 쓸쓸한 저녁을 준비하는 아낙네들의 바쁜 손길인 연기를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된다.
화자는 전쟁을 해야 할 국경(萬里)에는 너무 조용하여 아직도 전쟁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시상을 떠올린다. 오랑캐들도 이런 때는 다소라도 인정이 있었던지 태평함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음을 암시한다. 비록 적군이지만 한가하게 지내는 그런 모습을 치하해 보는 화자는 차분한 상상력을 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용성 가을 해 늦으니 수루 연기 피어올라, 국경 전쟁 기미 없고 오랑캐도 태평한 걸’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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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태조(太祖) 왕건(王建:877~943)으로 조선의 제1대 왕이다. 재위기간은 1392∼1398년이다. 우군도통사로서 요동정벌을 위해 북진하다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을 폐하였다. 막강한 권력으로 전제개혁을 단행했고 신진세력의 경제적 토대를 구축해 조선을 세우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겼다.

【한자와 어구】
龍城: 흉노족의 본거지. 외몽골 지역. 秋日晩: 가을 해가 늦다. 古戍: 오래된 수루. 寒烟生: 차가운 연기(곧 쓸쓸한 연기). 生: 생긴다. 피어오른다. // 萬里: 만리, 국경. 無金革: 모든 병기가 없다. 여기에선 전쟁이 없다는 뜻. 胡兒: 오랑캐. 賀: 치하하다. 太平: 태평함. 전쟁을 하지 아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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