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 15회 정약용, ‘쥐와 야합한 고양이’ 시를 짓다.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 15회 정약용, ‘쥐와 야합한 고양이’ 시를 짓다.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청렴연수원 청렴강사)
  • 승인 2019.12.0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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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 전경

다산초당에서 지낸 정약용은 1810년에 ‘고양이[貍奴行]’시를 지었다. 시를 읽어보자.

남산골 한 늙은이 고양이를 길렀는데      
해묵고 꾀 들어 요사하기 늙은 여우로세   

밤마다 초당에 둔 고기 뒤져 훔쳐 먹고.   
항아리며 단지며 술병까지 다 뒤지네.      

어둠 타고 살금살금 못된 짓 다하다가     
문 박차고 소리치면 그림자도 안 보이나    

등불 켜고 비춰보면 더러운 자국 널려 있고 
이빨자국 나 있는 찌꺼기만 낭자하네.      

해묵고 요사한 고양이는 쥐 잡을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주인 집 고기를 훔쳐 먹고 항아리를 엎는 등 못된 짓을 하고 있다. 

늙은 주인 잠 못 이뤄 근력은 줄어가고     
백방으로 생각해도 나오느니 긴 한숨뿐     

생각하면 고양이 죄 극악하기 짝이 없어     
당장에 칼을 뽑아 목을 치고 싶지마는      

하늘이 너를 낼 때 무엇에 쓰려고 했던가.    
너 보고 쥐를 잡아 백성 피해를 없애라 했지. 

들쥐는 구멍 파서 벼 싹 물어다 쌓아두고  
집쥐는 이것저것 안 훔치는 물건 없어   

백성들 쥐 등쌀에 나날이 초췌하고      
기름 말라 피 말라 피골이 상접이라    

그래서 너를 보내 쥐 잡이 대장 삼고    
마음대로 찢어 죽일 권력 네게 주었으며 

황금같이 반짝이는 두 눈도 네게 주고   
칠흑 같은 밤중에도 올빼미처럼
벼룩도 잡을 만큼 두 눈 밝혔지. 

보라매같이 예리한 발톱 네게 주고      
호랑이처럼 톱날 같은 이빨도 네게 주고 

펄펄 날고 내리치는 날쌘 용기까지 네게 주어 
쥐들이 너를 한번 보면 옴짝달싹 못하고 몸을 바치게 않았더냐.
                                        
쥐 잡으라고 고양이에게 온갖 권한을 주었는데 엉뚱한 짓 하고 있으니  늙은 주인은 한숨만 나온다.  

날마다 백 마리씩 쥐 잡은들 누가 말리랴        
보는 이들 네 기상 뛰어나다고 연거푸 칭찬만 할 텐데 

그래서 팔사제(八蜡祭)에도 네 공로 보답하려고  
누런 의관 차리고 큰 술잔에 술을 부어 제사 않더냐.

팔사제(八蜡祭)는 매년 농사가 끝나고 농사에 관계되는 여덟 신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여덟 신은 신농씨(神農氏 농사를 처음으로 가르쳤다는 중국 전설의 황제) 후직(后稷 농사를 관장하는 장관), 농(農), 우표철(郵票畷 권농관이 농민을 독려하기 위해 밭 사이에 지었다는 집), 고양이, 제방, 도랑, 곤충이다.

이렇게 고양이는 농사에 도움을 주는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런데 너는 지금 한 마리 쥐도 잡지 않고      
도리어 네 놈이 도둑질을 하다니             

쥐는 원래 좀도둑이라 피해도 적지마는         
너는 지금 힘도 세고 세도 높고 맘씨까지 거칠어 

쥐들이 못하는 짓 제멋대로 행하여       
처마 타고 뚜껑 열고 담 벽 무너뜨리니    

그러니 쥐떼들이 꺼릴 것이 없어           
구멍 밖에서 껄껄대고 수염을 흔드네.      

쥐들은 훔친 물건 모아다가 너에게 뇌물로 주고
태연히 너와 함께 돌아다니니                

쥐들은 고양이에게 뇌물을 주고, 고양이 비호아래 물건을 훔친다.
고양이는 쥐들과 한 통속이다.   

호사자들 때때로 너를 그리는데           
무수한 쥐떼들이 하인처럼 너를 호위하고  

나팔 불고 북치고 떼를 지어서는     
대장기 높이 들고 앞장 서 가네.      
네 놈은 큰가마 타고 교만 부리면서  
쥐들의 떠받듦만 좋아하고 있구나. 
 
내 이제 붉은 활에 큰 화살 메워 네놈 직접 쏴 죽이리.             
만약에 쥐들이 행패부리면 차라리 무서운 개 불러내리라.
                                             
다산의 대표적인 우화시(寓話詩)이다. 그러면 남산골 늙은이 그리고 고양이와 쥐는 누구일까? 남산골 늙은이는 백성, 쥐는 도둑, 고양이는 도둑 잡는 포도군관(捕盜軍官)이다. 다산은 도둑을 잡아야할 포도군관이 도둑의 뒷배를 봐주고 뇌물을 받는 현실을 ‘고양이’시를 통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지금은 어떤가? 쥐 뒷배 봐주는 고양이는 없나?

다산초당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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