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소리 특집] 6·25전쟁은 무섭고 아픈 것이었다
[시민의소리 특집] 6·25전쟁은 무섭고 아픈 것이었다
  • 황영빈 황희재 학생시민기자
  • 승인 2019.12.05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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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소리>와 광주전남재향군인회가 주최하는 '전남 평화통일 학생시민기자단 대정장'현장 체험을 하기위해 이른 새벽 버스에 몸을 실었다.

북녘을 마주한 임진각 독개다리 위에서 찰칵 사진을 찍은 황영빈 희재 남매

여동생 희재, 그리고 엄마랑 버스에 올라  광주를 벗어나자 TV 화면을 통해 6·25 전쟁에 관한 영상이 나온다.
1950년 그날 새벽, 북한군이 불법 남침함으로써 한반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 대비 태세를 갖추지 못한 남한은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겼다. 한강 교량들이 폭파되고 시민들은 피난을 떠나야만 했다. 북한군은 아무런 대비태세를 갖추지 못한 남한, 아니 낙동강까지 단숨에 밀고 들어왔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과 북한군·중공군 사령관이 정전 협정을 맺으며 휴전 상태에 도달한다.
‘종전’이 아닌 ‘휴전’. 한반도의 불행은 여기로 부터 시작됐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군의 전사자 수는 약 13만 7,900명, 유엔군 전사자 약 3만 3,700명에 이른다. 또 수많은 국민들이 피난과 전쟁 참전 등으로 가족을 잃거나 가족과 헤어지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겪었다.

북녘땅 관산반도를 망원경을 통해 들여다보는 황영빈 희재 남매
오두산 통일전망대서 북녘을 바라보는황영빈 남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는 알지만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와닿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올라 망원경으로 북한 땅인 관산반도와 3층짜리 흰색 건물을 관찰했다. 그리고 북한 사람을 발견했을 때 이렇게 가까이에 있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서로를 그리워하는 가족이 있는데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게만 여겨졌다.
만약 내가 매일 함께 노는 내 동생과 만나지 못하게 된다면 나는 분명 슬플 것이다.

나는 전쟁으로 끊어져 버린 독개다리 위에서 총탄 흔적들을 보며 6·25전쟁 당시의 참담함을 생각해 보았다. 전쟁은 많은 것을 부수고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 갔다. 전쟁은 무섭고 아픈 것이었다. 지금도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있다.

그래서 망향이란 비문이 오롯이 가슴에 다가온다. 
오십년 끊긴 안부가 / 바람 앞에 서 있다/목이 멘 이산의 아픔/불러보는 사람아/송악산 솔밭 사이로/ 고향 하늘이 보인다.

닿을 듯 한데 다가서지 못하는 남북 현실을 바라보면 북녘을 향해 외치고 싶다. "우리는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꼭 평화통일을..."

 <오정초등학교 4학년 3반 황영빈이 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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