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를 받다
봉투를 받다
  • 문틈 시인
  • 승인 2019.12.0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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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하는 자리에 출가한 가족들이 모였다. 어머니의 자식들이 결혼해서 낳은 자식들의 자식까지 4대가 모여 잔치를 했다. 잔치래야 식당에 가서 조촐하게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생신을 축하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사람 사는 것이 이런 것이다, 새삼 그런 것을 느꼈다. 어머니의 말처럼 사람살이란 부모님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 중하다. 어머니께 마련해간 봉투를 드렸다. 생신 축하 금일봉이다. 봉투에 마음을 담아 전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 축하 메시지를 전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아마 밑엣 형제들도 다들 어머니께 봉투를 하나씩 드렸을 것이다. 어머니는 사실 그 봉투를 쓰실 데가 없다. 받는 그 순간, 자식들의 마음을 느끼는 것이지 봉투의 알맹이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그 봉투를 모아 두었다가 어머니는 늘 그랬듯이 자식들이나 손주들에게 나중에 되돌려 주게 될 것이다.

봉투란 참 묘한 것이다. 결혼식에 하객으로 갈 때도 봉투, 문상을 갈 때도 봉투, 입학 졸업 때도 봉투, 생일 때도 봉투.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장면에서 봉투를 건넨다. 그 봉투에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생각들이 함께 들어간다.

얼마 전의 일이다. 내 손전화기가 구식이어서 단톡방 같은 것이 안된다. 지인 어머니가 상을 당했는데 모르고 지냈다가 며칠 뒤에 만났을 때 봉투를 건넸다. 지인은 봉투를 받고 나서 곧 알맹이를 빼 지갑을 열어 집어넣고는 봉투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장면에서 뭐라 말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가 뭘 잘못하다가 들킨 느낌 같은. 지인은 별뜻없이 그랬겠지만 하여튼 나는 봉투의 다른 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봉투는 인간관계에서 윤활유 같은 기능을 하는 것 같다. 내 어릴 적 아버지가 서울서 출장 온 친척 분에게 봉투를 전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때 출장 온 사람은 서울 공기업의 간부이고 아버지는 자영업자에 불과한데 왜 봉투를 주는 것일까, 하고 의아해했었다.

지금은 다 이해가 간다. 빈손으로 보내는 마음이 안되어서 그랬던 것. 그것을 보통 우리는 인정이라 한다. 인간 사이의 정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다.

어떤 경우엔 봉투를 건넨 후에 자칫 ‘쩨쩨하다’ ‘누굴 뭘로 보는 거야’ 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래서 봉투에 알맹이를 넣을 때 생각이 같이 들어간다. 아들이 결혼할 때 먼 시골에 사는 지인에게 청첩장을 보냈더니 전화가 왔다. “내가 올라갈 수 없으니 은행 계좌번호를 좀…” 그러면서 “이건 품앗이니까” 했다.

솔직히 말해 그 순간 또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별 수 없는 인간이다. 봉투를 후~ 불어 알맹이를 집어넣을 때 생각과 조율을 할 때가 더러 있다. 받는 상대의 마음을 지레짐작해보는 것이다.

봉투는 참 묘한 것이어서 봉투를 열어놓고 자칫 쩨쩨해지기 쉽다.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도 있지만 그런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돈 많은 부자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부자의 정의를 이렇게 내린다. ‘봉투를 열고 공(0) 하나를 더 넣는 사람.’ 나는 그 정도에는 어림도 없다.

하여튼 봉투는 사람의 일면을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봉투를 건네는 순간 미묘한 심적 상태가 된다. 최근 후배의 딸 결혼식에 봉투를 냈는데 결혼식이 끝나고도 인사가 없었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갈 수도 있는데 왠지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봉투는 이렇게 생각보다 복잡한 속내를 담고 있다. 여기서 우리와는 전혀 다른 미국이나 일본 사람들의 예를 들 것까진 없겠다.

봉투는 우리만의 관습, 인사, 인정을 챙기는 문화로 봐야 할 대목이 분명 있다. 미풍양속이라고 할까 말까 망설여지긴 하지만.

“네 막내숙부가 왔다 갔어야. 놀고 있는 처지인 줄 내가 뻔히 아는데 봉투를 놔두고 가셨다.” 어머니는 평소 멀리 사는 서울에 사는 막내숙부의 안부가 궁금했는데 오랜만에 들러서 인사를 하고 간 모양이다. 그걸 잊지 않고 고마워하신다.

어머니 생신 축하를 마치고 일어날 참에 막내 동생이 불쑥 내게 봉투 하나를 내민다. “이것이 뭔데?” “그냥 받으쇼.” 나는 잠시 가슴이 먹먹했다. 나는 평소 맏이로서 늘 주는 사람으로 살아 왔더랬는데 형제한테서 봉투를 받는 그 순간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동했다.

형제간의 도타운 정과 함께 내가 어느새 받는 쪽에 들어섰다는 느낌…. 받고 나서 주는 쪽이 받는 쪽보다 훨씬 더 마음이 평화롭다는 것을 격하게 느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더 아름답다고 하였던가.

막내가 준 봉투를 그대로 서랍 속에 두었다가 종손들을 만날 때 용돈으로 나누어 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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