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 11회 정약용, 호랑이 시를 짓다.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 11회 정약용, 호랑이 시를 짓다.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청렴연수원 청렴강사)
  • 승인 2019.11.11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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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 편액

1808년에 정약용은 ‘호랑이 사냥[獵虎行]’시를 지었다. 정약용은 1808년 봄에 거처를 다산초당으로 옮겼는데, 이 시는 다산초당에서 지은 것 같다. 시에 ‘오월’이란 구절이 나온다.

오월이라 깊은 산 풀숲이 우거지면    五月山深暗草莽
호랑이가 새끼치고 젖을 먹여 기르는데    於菟穀子須湩乳

여우 토끼 다 잡아먹자 사람까지 해치려고    已空狐兎行搏人
산속 동굴 벗어나서 마을에 와서 설친 통에    離棄窟穴橫村塢

나뭇길도 다 끊기고 김매기도 하지 못해    樵蘇路絶藨哀停
산골 백성 대낮에도 방문 굳게 닫아 놓네.    山氓白日深閉戶

홀어미는 슬피 울며 칼로 찌를  생각하고   嫠婦悲啼思剚刃
장정들은 분에 차서 활 당길 모의하네.    勇夫發憤謀張弩

그 소식을 들은 사또 측은한 마음 들어     縣官聞之心惻然
졸개들을 동원하여 범사냥 독촉하였네      勅發小校催獵虎

몰이꾼 나타나자 온 마을이 깜짝 놀라    前驅鑱出一村驚
장정들은 도망가 숨고 늙은이만 붙들리네.    丁男走藏翁被虜

문에 당도한 졸개들 그 기세 무지개 같고    小校臨門氣如虹
호령하며 몽둥이질 빗발치듯 어지러워    嘍囉亂棓紛似雨

닭 삶고 돼지 잡고 온 마을이 야단법석    烹雞殺猪喧四隣
방아 찧고 자리 깔고 이리저리 분주한데.    舂糧設席走百堵

다투어 술 찾아 코 삐뚤어지게 퍼마시고는    討醉爭傾象鼻彎
군졸 모아 어지러이 계루고 악기 둥둥 치니    聚軍雜撾鷄婁鼓

이정은 머리 싸매고 전정은 넘어지고    里正縛頭田正踣
주먹질 발길질에 붉은 피 토하네.    拳飛踢落朱血吐

수령이 호랑이를 잡으라고 했는데 군졸들은 마을에 와서 거나하게 술판을 벌린다. 민원(民願) 해결 해준다고 하면서 민원(民怨)을 일으켰으니 전형적인 민폐(民弊)이다.

호랑이 가죽 들어오면 사또는 입 벌리고    斑皮入縣官啓齒
돈 한 푼 안 들이고 좋은 장사 잘했네.    不費一錢眞善賈

당초에 어떤 자가 호랑이 피해 신고했느냐    原初虎害誰入告
입빠른 것이 잘못이라 뭇사람의 노여움 사네.    巧舌喋喋受衆怒

맹호에게 다쳐보았자 한두 사람이 고작일 텐데    猛虎傷人止一二
어이하여 천백 명이 그 고통 받는단 말인가.    豈必千百罹此苦

차라리 호랑이 잡아달라고 신고 안 했으면 온 마을이 거덜 나지는 않았을 것인데. 피해 신고한 자가 도리어 마을 사람들의 노여움을 사고 있다.

홍농에서 강 건너 일 듣지 못했던가.    弘農渡河那得聞

홍농에서 강 건넌 일은 중국 진(晉)나라의 유곤이 홍농태수(弘農太守)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어, 호랑이가 새끼를 업고 태수를 피해 황하 강을  건너갔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태산에서 곡한 여자 그대는 보지 못했나.    泰山哭子君未覩

공자(孔子)가 태산(泰山) 옆을 지나가는데 어떤 여인이 무덤에서 슬피 울고 있었다. 공자는 수레 앞턱의 가로나무를 잡고 듣고 있다가 제자인 자로(子路)를 시켜 그 연유를 묻게 했다.

“부인이 우는 것이 심히 깊은 근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부인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시아버지가 호랑이에게 죽었고, 남편이 또 호랑이에게 죽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들이 또 호랑이에게 죽었습니다.”

그러자 공자가 물었다.
“그러면 왜 떠나지 않았습니까?”

부인이 대답했다.
“태산에는 가혹한 정치(苛政)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공자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잘 기억해 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다는 것을 (가정맹어호 苛政猛於虎)”
  
이 이야기는 《예기(禮記) 〈단궁(檀弓)〉》과  《공자가어(孔子家語) 〈정론해(正論解)〉》에 나온다.

예나 지금이나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다.

선왕(先王)들은 사냥을 해도 때를 가려 했고    先王蒐獮各有時
여름철에는 모 잘 자라도록 군사훈련 아니했네.    夏月安苗非習武

시(時)도 때도 없이 백성을 괴롭히는 챙기는 관료들. 다산은 탄식만 나온다.  

가증스런 관리들은 밤중에도 문 두드리니    生憎悍吏夜打門
호랑이 남겼다가 그들을  막았으면     願留餘虎以禦侮

왜 호랑이는 가증스런 관리들을 안 잡아가고 애꿎은 민초만 잡아가나?  
세상이 정말 불공평하다.

바위에 새겨진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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