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46) 분원(憤怨)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46) 분원(憤怨)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11.0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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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이렇게 말이 없고 푸르기만 하구나

현대 사법제도인 법원의 판결도 엉성하기 그지없다. 이른바 말보다는 남아있는 증거주의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증은 가지만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억울한 사람이 옥살이를 하거나 패소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예나 이제나 이런 폐단이 우리 사회에 존재했던 모양이다. 시인은 사실과 전혀 다른 억울한 옥살이를 우공과 추연의 고사를 인용하면서 시문을 써서 옥의 벽에 붙여 호소한다. 하늘도 노하여 천동과 번개를 쳤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憤怨(분원) / 거인

우공이 통곡하니 삼년이나 가물었고

추연이 슬퍼하니 오월에도 서리 내려

내 시름 우공 추연이라 푸르기만 하구나.

于公痛哭三年旱     鄒衍含悲五月霜

우공통곡삼년한     추연함비오월상

今我幽愁還似古     皇天無語但蒼蒼

금아유수환사고     황천무어단창창


하늘은 이렇게 말이 없고 푸르기만 하구나(憤怨)로 직역해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거인(巨仁:?∼?)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우공이 통곡하니 삼년동안이나 가물고 / 추연하게 슬픔을 머금으니 오월(여름)에도 서리가 내리는구나 / 이제 나의 깊은 시름은 돌이키니 지금도 예(우공과 추연)와 같건만 / 하늘은 말이 없고 다만 푸르기만 하구나]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분하고 원통함]으로 번역된다. 신라 진성여왕은 행실이 문란하고 국정도 바로 다스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누군가 비방하는 대자보를 써 붙였다. 여왕이 명하여 그를 잡으려 했으나 잡지 못했다. 그 자는 틀림없이 ‘거인’의 소행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여왕은 거인을 잡아 가두었다. 거인은 억울하여 옥 벽에다 위 시를 썼더니 갑자기 우박이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쳤다. 이에 여왕은 두려워 곧 거인을 석방했다는 것이 시적인 배경이다.
여기서 다음 고사를 알고 넘어가자. ‘于公(우공)’은 한(漢) 나라 사람으로 한 효부가 시누이에게 모함을 받았다. 태수에게 억울하게 죽게 되어 그 여인을 변호했으나 뜻을 이루어지지 못했다. ‘추연(鄒衍)’은 남의 모함을 받아 옥에 갇혔던 추나라 사람이다. 시인은 이 두 사람은 억울한 누명을 썼음을 인용한다.
화자는 자기의 억울한 시름을 우공과 추연에 비교하면서 하늘은 말없이 푸르기만 하다고 탄식한다. 아무 근거 없이 남을 무고하는 식의 못된 인간이 있었다면 하늘을 반드시 감동시킬 수 있다는 이 시의 위대한 힘은 신비스럽고도 장쾌한 은유적인 표현이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우공 통곡 삼년 가뭄 오월에도 서리 내려, 깊은 시름 예와 같아 말없는 하늘 푸르네’ 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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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거인(巨仁:?∼?)으로 신라 진성여왕 때 은자(隱者)로 알려진 왕거인(王巨仁)이란 사람이다. 작자에 대한 생몰연대와 자세한 행적은 대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한자와 어구】
于公: 우공. 痛哭: 통곡. 三年旱: 삼년동안 가물다. 鄒衍: 추연. 含悲: 슬픔을 머금다. 五月霜: 여름에도 서리가 내린다. 곧 ‘오월 염천에 서리가 내린다’는 뜻. // 今: 이제. 我幽愁: 나의 깊은 시름. 還: 돌이키다. 似古: 예과 같다. 皇天: 황천. 無語: 말이 없이. 但: 다만. 蒼蒼: 푸르기만 하다. 의태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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