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 10회 정약용, ‘수심에 싸여(憂來)’ 시 12수를 짓다.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 10회 정약용, ‘수심에 싸여(憂來)’ 시 12수를 짓다.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청렴연수원 청렴강사)
  • 승인 2019.11.04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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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강진에 귀양 온지 3년이 되는 1804년에 정약용은 ‘수심에 싸여(憂來)’ 시 12수를 지었다. 아직도 동문 밖 주막집 토담 방에서 지내던 시절이었다. 이 시는 당시 정약용의 삶과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시이다.

시를 읽어보자

1
어려서는 목표가 성인이었다가  弱齡思學聖
중년에 와 현자라도 바랐는데  中歲漸希賢
늘그막엔 우하(평범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달게 여기나  老去甘愚下
수심에 싸여 잠 못 이루네.  憂來不得眠

귀양살이 중 정약용의 속내가 잘 드러난다.

2
복희 시대에 살지 못하여  不生宓羲時
복희에게 물을 길이 없고  無由問宓羲
중니 시절에 태어나지 못해  不生仲尼世
중니에게도 물을 길이 없네  無由問仲尼

복희씨는 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제왕이고, 중니는 중국 춘추시대에 살았던 공자이다.

그런데 원주에는 ‘이때 《주역(周易)》 전(箋)을 쓰고 있었다.’고 적혀 있다. 정약용은 1803년 겨울부터 주역을 읽기 시작하여 1804년 여름에 초고를 완성했다.

정약용이 주역을 공부하였다는 것은같은 해에 쓴 시 ‘근심을 달래며’ 12수중 2수에도 나타나 있다.

“천하의 책들을 모두 삼키고
마지막에 주역을 토해 내려 했는데
하늘이 그 인색함을 풀고자 하여
나에게 삼년 귀양 내리셨도다.”
 
3
한 알의 야광주가  一顆夜光珠
우연히 외국 상인 배에 실렸다가  偶載賈胡舶
중간에 풍파를만나 침몰되니  中洋遇風沈
만고에 그 빛을 다시는 볼 수 없네.  萬古光不白
 
훌륭한 인재가 널리 쓰이지못하고 버려지는 것을 한탄하는 시이다.
그런데 야광주는 누구를 말할까?

4
입술 타고 입은 이미 말랐고  唇焦口旣乾
혀도 갈라지고 목도 다 쉬었네.  舌敝喉亦嗄
내 마음 아무도 아는 자 없고  無人解余意
너울너울 밤만 오려고 하네.  駸駸天欲夜

5
취하여 북산에 올라 통곡하니  醉登北山哭
통곡소리 하늘에 사무치건만  哭聲干蒼穹

옆 사람 그 속을 모르고서  傍人不解意
나더러 신세가 궁하여 운다고 하네.  謂我悲身窮

6
천 명이 술에 취해 떠드는 속에  酗誶千夫裏
선비 하나 의젓하게 있고 보면  端然一士莊
그 천 명 모두가 손가락질하며  千夫萬手指
그 한 선비 미쳤다고 한다네.  謂此一夫狂

이게 바로 정약용의 심사였다.
이 시는 강진군 사의재 팻말에 적혀 있다.

사의재에 있는 한시 팻말

7
어쩔 수 없이 늙고  無可奈何老
어쩔 수 없이 죽지  無可奈何死
한번 죽으면 다시 태어나지 못하는  一死不復生
인간 세상을 천상으로 여기다니  人間天上視

8
실날같이 어지러운 눈앞의 일들  紛綸眼前事
바르게 되는 일 하나도 없지만  無一不失當

바르게 정리할 길이 없기에  無緣得整頓
생각하면 혼자 가슴만 쓰릴 뿐이네  撫念徒自傷

9
마음이 육신의 노예 되었노라고  以心爲形役
도연명도 스스로 말한 바 있지만  淵明亦自言

백 번 싸워야 백 번 다 지니  百戰每百敗
이 몸은왜 이리 멍청할까  自視何庸昏
 
도연명(365-427)은 ‘귀거래사’로 유명한 은거한 시인이다.

10
태양이 소리같이 빨리 질주하여  太陽疾飛靃
총알도 따르기 불가능하네.  銃丸不能追

그를 잡아맬 길이 없어  無緣得攀駐
그것을 생각하면 슬프기만 하네.  念此腸內悲

11
호랑이가 어린 양을 잡아먹고는  虎狼食羊羖
붉은 피가 입술에 낭자하건만朱  血膏吻唇

호랑이 위세가 이미 세워진지라  虎狼威旣立
여우와 토끼는호랑이를 어질다 찬양하네.  狐兎贊其仁

호랑이는 봉건지배층, 어린 양은 힘없는 백성들, 여우와 토끼는 지배층에 빌붙어서 이익을 챙기는 아첨꾼들이다. 정약용은 우화로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12
예쁘장하고 작은 복사나무  榮榮小桃樹

봄철이면 가지가지 꽃이지만  方春花滿枝

해 저물어 이리저리 꺾이고 나면  歲暮有摧折
쓸쓸하기 옛 몰골이 아니지  蕭蕭非故姿

혹시나 복사나무 몰골이 정약용 몰골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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