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 9회 정약용, 신분제도의 문제점도 지적하다.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 9회 정약용, 신분제도의 문제점도 지적하다.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청렴연수원 청렴강사)
  • 승인 2019.10.2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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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유네스코 기념인물로 선정된 정약용

정약용이 1804년에 지은 ‘여름날에 술을 마시다’의 마지막은 신분제도의 모순에 대한 탄식이다.  
 
산악이 영재를 만들어낼 때에     
씨족을 가려서 만들 리 없고      

한 가닥 좋은 기운이 반드시       
명문가 최씨와 노씨의 뱃속에만 있으리란 법 없지 

솥은 솥발이 뒤집혀야 좋고      
난초도 깊은 골짝에서 나는 법  

송나라 위공은 비천한 집 출신이었고    
송나라 범중엄도  의붓아비 밑에서 자랐네.  

명나라 대신 구준도 먼 변방에서 났지만 
재주와 지모가 모두 빼어났거늘 

어찌하여 등용 길이 그리도 좁아      
사람이 움츠려 기를 펴지 못 펴나.  

오직 제일골(第一骨 신라시대 귀족)만 발탁해 쓰니        
나머지 골품은 노예와 같은 신세
 
서북 사람들 언제나 얼굴 찡그리고   
서얼들은 원통해 통곡소리 드높네.    
위세 당당한 수십 가문이          
대대로 국록을 먹어치우니           

그들끼리 패가 서로 갈리어          
엎치락뒤치락 죽이고 물고 뜯어      

약자의 살을 강자가 먹고는          
대 여섯 집 호문(豪門)만 살아남아서    

이들 만이 경상(卿相 정승)이 되고      
이들 만이 악목(岳牧 판서와 감사)이 되고 

후설(喉舌 승정원 관원) 맡은 자도 그들이고   
이목(耳目 감찰 관원) 노릇도 그들이 다 하며  

이들만이 모든 관직 다 해먹고           
이들만이 옥사를 감독하네.             

지역차별, 신분차별에 권력독점까지 하고 있다.

먼 시골 백성이  아들 하나 낳았는데        
빼어난 기품이 난곡 (鸞鵠)  새와 같고
               
팔 구세 되어서는                  
의지와 기상이 가을철 대나무 같아              

아비 앞에 꿇어앉아 여쭙는 말이
“제가  지금 구경(九經)을 다 읽고           
경술이 누구보다 으뜸이오니            
홍문관에 들어갈 수 있겠지요”    

구경(九經)은 시경·서경·역경·효경·춘추·예기·논어·맹자·주례이다.  

그 아비 하는 말 “너는 지체가 낮아            
임금을 곁에서 모실 수 없을 것이다.”
          
자식이 하는 말 “제가 이제 큰 활을 당길 만하고            
무예가 춘추시대 진나라 장수 극곡과 같으니              
오군영의 장수나 되어
말 앞에다 대장기를 꽂으렵니다.

그 아비 하는 말 “ 너는 지체가 낮아       
장군 수레 타는 것도 허락 안 할 것이다”   

자식이 다시 하는 말 “제가 이제 관리 일 공부했으니 
애민하는 순리(循吏) 한나라 공수와 황패의 뒤를 이어받아
그냥 군부(郡符)를 허리에 차고
죽도록 고량진미 실컷 먹으렵니다.
 
그 아비 하는 말 “너는 지체가 낮아
애민의 순리도 가혹한 혹리(酷吏)도 너에겐 상관 없은 일”

아비는 자식의 능력이 출중해도 출세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이 말 듣고 자식 놈 발끈 노하여
책이고 활이랑 던져버리고
쌍륙놀이와 골패놀이
마작놀이 공차기놀이로
허랑방탕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늙어서는 시골구석에 파묻혀버리네.

실력이 좋아도 무엇 하나? 가문과  혈통이 좌지우지하니.
 
권세 있는 집안도 자식 하나 낳았는데
사납고 교만하기 천리마 같고
그 아이 팔구세가 되어  
예쁘장한 옷을 입고 다니면
객들이 하는  말이 “너는 걱정 없다

너희 집은 하늘이 복 내린 집이고
네 벼슬도 하늘이 정해놓아서
청관 요직 마음대로 될 것이니
부질없이 헛고생 해가면서
매일 같이 글공부 할 필요 없으리.
때가 되면 좋은 벼슬은 저절로 오리니
편지 장이나 쓸 줄 알면 족하리.”
 
그 아이 이 말 듣고 깡총깡총 좋아하고
다시는 서책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작이며 골패라든지
장기바둑 쌍륙에 빠져
허랑방탕하여 인재 되지 못하건만
높은 벼슬 차례로 밟아 오르네.
먹줄 한 번 못 맞아본 나무가
어떻게 큰 집 재목 될 것인가

두 집 자식 다 자포자기하고 말아
세상천지에 어진 자라곤 없어졌다네.
곰곰 생각하면 속만 타기에
부어라 다시 또 술이나 마신다네.

정약용은 평민의 아들과 권세가의 아들이 타락하는 과정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다산은 속이 탄다. “평민 자식은 실력이 있어도 왜 출세할 수 없는가?
권세가 자제는 놀면서도 어이하여 출세하는가?”

지금은 어떤가? 신분특혜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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