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만 민주주의인가?
광장만 민주주의인가?
  • 문틈 시인
  • 승인 2019.10.24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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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주엘라 같은 남미 국가들에서는 기름값이 올랐다, 지하철 요금이 올랐다, 하면 시민들이 떼지어 거리로 몰려나와 시위를 벌이는 것이 흔한 일이다. 최근에도 지하철 요금이 50원이 올랐다 하여 대규모 군중이 모여 폭동 사태가 벌어졌다. 대의민주주의가 실종하고 광장에서 벌이는 직접 민주주의가 압도한다. 

홍콩에서도 벌써 몇 달째 수십 만명이 거리로 나와 경찰과 대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중국은 홍콩에 간섭 말라는 것이다. 남의 나라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도 몇 달 전부터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용을 둘러싸고 ‘조국수호’ ‘조국파면’을 주창하는 군중집회가 서울의 광화문과 서초동 거리를 꽉 매웠다. 

시위는 조국 장관이 물러난 후에도 두 패로 나뉘어 집회가 끊이질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시위를 두고 ‘국민들의 서로 다른 견해 표시’로서 국민 분열이 아닌 것으로 좋게 이해하는 듯하다. 아니 일부러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멀리는 광우병 시위로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킨 촛불 시위, 그리고 요즘은 조국 전 장관 가족의 재판을 둘러싸고 구속, 불구속이 쟁점이 되어 거리에서 함성을 질러댔다. 조국 전 장관 부인이 구속된 이후로는 공수처 설치를 이슈로 광장의 대결이 날카롭게 마주 서 있다.

군중 집회가 있는 날은 전국 지방에서 참여 군중을 버스로 실어나른다. 광장은 교통두절 사태가 일어나 시민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민이 뽑은 고액연봉자 국회의원들이 있건만 국회는 거리의 여론에 밀려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다른 의견의 표출이라고 하지만 멀쩡히 대의 기관인 국회가 있는데 선량들의 정치가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고 있음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처럼 이슈가 생길 때마다 대규모 군중이 집결하여 마치 세 대결하듯 서로 다른 주장을 앞세우고 대치 국면을 만드는 광장의 정치는 그 정도가 임계점에 이른 느낌이다.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법은 없을까? 인터넷 공간에 수만 명으로 구성된 상원 비슷한 인터넷 국회를 설치할 것을 일찍이 이 칼럼 난에서 제안한 바가 있다. 거리에서 대규모 군중으로 밀어붙이는 물리력 행사에서 이제는 인터넷 실명제를 통한 적정한 절차와 표현 방법이 필요해 보인다. 

이슈가 생기면 광장으로 나가서 깃발을 들고 세를 몰아 다그치는 것은 건전한 민주주의 발달에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광장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대로 선동이 난무한다. 촛불시위 때도 여러 차례 참여했지만 박근혜 탄핵 주제 외에  ‘온 사람이 온 말’을 하는 집회가 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사회주의가 답이다’ 라고  쓰여진 인쇄물과 배지들 살포하는 장면이었다. 이를 보고 속으로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정당들도 오직 지지세력을 모으는데만 정신이 팔려 선동, 선전을 일삼고 있어 매우 유감이다. 이런 대규모 군중 집회가 일상사가 되다보니 나라가 시끄럽고 급기야는 불안감이 생길 정도다. 나같은 정치 문외한이 볼 때 한국에서 정치하기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국민들은 다양한 경로로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국회로, 청와대로 보낼 수 있다. 사실상 국회를 보완하는 언로가 다양하게 열려 있는 셈이다. 그런데 왜, 다중의 군중이 모여서 소리를 질러야만 문제가 해결된다고 사람들은 믿는 것일까.

몇백 만명이 모였다는 둥 하면서 말이다. 문제는 어떤 한 이슈에 국민의 의견을 표현하는 수준이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 두 패로 나뉘어 ‘찬성’ ‘반대’로 싸우듯 대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미에서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우윳값을 내리면 집으로 돌아간다. 한데 우리는 특정 이슈를 놓고 죽자 사자하면서 국민들끼리 분열하여 대치한다는 점이 매우 우려스럽다. 

물론 정부 정책에 찬반을 표시할 수 있고, 또 그러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지금 광장에 몰려나가 소리지르는 식으로는 아니다.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 어떤 정책을 실시하기 전에 주권자인 국민들에 대한 사전 설득 작업이 필요하다. 

어떤 군중 집회에서 어느 목사가 나와 소리높여 말하기를 ‘대통령이 나와서 국민들 설득시키거나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설득당하거나 하라’고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것은 정치의 요체가 설득과 타협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문인, 교수들까지도 패가 갈려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이 생전 이런 사태는 드물게 본다. 국민이 정치를 생각하지 않는 때가 좋은 시절이라는 말이 맞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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