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콩 볶아 먹는 일
비 오는 날 콩 볶아 먹는 일
  • 문틈 시인
  • 승인 2019.10.0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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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은 콩을 볶아 먹었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는 비 오는 날엔 으레 콩을 볶아주셨다. 그 시절엔 과자 대신 콩을 볶아 주전부리 삼았다. 과자라곤 비과라고 불리던 기름종이로 싼 걸 어쩌다 먹어본 기억이 있다.

그보다는 자주 헌고무신이나 쇠붙이를 가지고 가서 엿가락을 바꿔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런 적은 드물었고, 이렇다 할 간식 같은 것이 없었다. 볶은 콩은 지금 생각하면 요즘의 과자나 초콜릿보다도 훨씬 건강에 좋은 간식거리였다.

맛은 고숩고 진하다. 콩의 주성분인 단백질 맛과 가마솥 불기운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알 두 알 그러다가 한 주먹 입에 털어넣고 씹을 때 입 안에 가득 번지는 맛은 매우 만족이었다. 반짝이는 장판 방을 뒹굴면서 콩을 주워먹으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은 볶은 콩이 저절로 떠오르고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와 부엌 가마솥에서 막 볶아낸 콩은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나이가 들면 아름답던 과거의 추억으로부터 힐링을 받는 것일까. 과거를 떠올리기보다 미래를 생각하며 몽상을 즐기는 내게 비가 오는 날은 내 기억에 강력하게 각인된 그 옛날의 볶은 콩 내음이 코 끝에 맴돈다.

지금 볶은 콩을 먹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신 밥에 콩을 넣어 먹는다. 밥에 연 콩과 볶은 콩은 그 맛이 전혀 다르다. 콩이 간직한 내음과 맛이 콩을 볶았을 때에야 비로소 완전하게 드러난다.

마당엔 빗소리가 가득하고 토방엔 식구들의 신발이 가지런하다. 방 안에선 가족들이 어울려 볶은 콩을 집어먹는 풍경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장면’ 이었다. 흔히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한다. 적어도 먹는 맛에 대해서라면 그 말이 틀림없을 것 같다. 어릴 적 혀끝에 새겨진 맛은 평생 가고도 남는다.

마르셀 푸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대목은 바로 이런 어릴 적 먹던 과자 마들렌을 떠올리면서 시작한다. 탈북자들이 이남에 와서도 이북에서 먹었던 영 못잊는 음식맛으로 든 것이 옥수수가루를 물에 갠 일명 옥수수떡이다.

우리 입에는 그런 것이 무에 그리 맛있겠느냐 할 초라한 그 옥수수떡 맛이 천하제일이라 하니 그런가보다 한다. 그럴 것이 맛이란 절대적인 것이 없다. 자신이 처한 환경과 감성과 그 맛에 얽힌 사연이 합작하여 맛의 추억을 만든다. 그렇게 해서 입에 들어온 맛은 혀뿐만 아니라 유전자에 새겨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당에는 지붕에서 지시락을 타고 내리는 비가 고랑을 만들어서 그 고랑 빗물 위에 생긴 빗방울들을 싣고 흘러간다. 빗방울은 큰 것, 작은 것, 아주 조그만 것들이 무시로 생겼다가 금방 꺼진다.

마당에 내리는 비는 진한 흙냄새를 풍긴다. 생명을 부추기는 듯한 흙냄새가 온몸으로 감겨들었다. 비 오는 소리가 나직하게 들리고, 방안에서는 형제들끼리 어울려 콩을 주워 먹는 아득한 그 옛날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새 아버지는 몸에 우장을 두르고 논빼미에 물꼬를 트시려고 삽을 들고 나갔다가 빗속으로 돌아오신다. 이제는 비가 와도 빗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제는 비가 와도 콩을 볶아 먹지 않는다. 비가 와도 형제들끼리 모이지 않는다.

아파트 5층에 살다 보니 내 마음을 적셔주는 빗소리는 세찬 소낙비가 아니라면 빗소리가 5층까지 들리지는 않는다. 엘리베이터도 빗소리를 싣고 올라오지 않는다. 네 개의 벽이 달린 시멘트 동굴에 갇혀 사는 삶이 참 삭막하기만 하다.

계절마다 비가 오는 풍경이 자아내는 느낌들이 다르다. 봄비는 마치 만물에게 무슨 소식이라도 전하듯 매우 친밀감 있게 온다. 여름비는 작정하고 온다. 거친 바람과 함께 내리기도 하고 혹은 작달비가 내려 개천이 불어나기도 한다. 만물에 물을 대는 품이 역력하다.

가을비는 처연한 데가 있다. 김소월이 노래하듯 ‘산 바람 소리/찬 비 듣는 소리/그대가 세상고락 말하는 날 밤에,/숯막집 불도 지고 귀뚜라미 울어라.’ 밤중에 찬비 듣는 소리가 애간장을 끊는다. 겨울에도 비가 올 때가 있지만 질척거려서 운치가 없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은 마음이 차분해진다. 삶에 지친 마음이 비에 적셔 가라앉는다. 비 오는 날은 실컷 울고 난 뒤처럼 마음이 한없이 정갈해진다. 나직이 속삭이는 듯한 빗소리는 삶이란 애써 견디며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나는 지금 나배기가 되어서야 그걸 새겨듣는다. 지금 나는 콩 볶아 먹던 시절에서 너무 멀리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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