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40) 상호호응시(相好呼應詩)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40) 상호호응시(相好呼應詩)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9.17 18: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그네의 베갯머리 한편이 비어 있네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는 멀리는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가요에도 심심찮게 전해 내려온다. 인류의 변천사는 음양의 원리에서 출발된다. 변장하는 도술(?)을 잘 부렸던 인물이 아마도 이몽룡이 아닌가 하지만, 어사 박문수도 그에 못지않았으리라. 평양의 명기에게 자기를 알리기 위해 생선장수를 가장한다. 일지매의 집에 들어가 잠자리를 청하면서 옥퉁소를 통해 의사 전달을 하여 생면부지 백호를 알아보고 상호호응시를 읊었다고 전하는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相好呼應詩(상호호응시) / 일지매․임백호

창가에는 복희씨적 달빛도 저리 밝고
마루에는 태곳적의 바람도 저리 맑네
금침을 누구와 덮나 비어있는 베갯머리.
窓白羲皇月(일)   軒淸太古風(임)
창백희황월       헌청태고풍
錦衾誰與共(일)   客枕一隅空(임)
금금수여공       객침일우공

나그네의 베갯머리 한 편이 비어 있네(相好呼應詩)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일지매와 임백호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창가에는 복희씨 적 달도 밝구나 / 마루에는 태곳적 바람도 맑기도 하네 // 비단이불 누구와 함께 덮을꼬 / 나그네 베갯머리 한편이 비어 있네]라고 번역된다. 임란 전에 평양의 명기와 조선 제일의 한량이 주고받은 호응시다.
위 시제는 [서로 응대하면서 짓는 시]로 번역된다. 염천유월 무더위에 비길 바 아닌 화답시가 얼마나 뜨거웠던지 그만 실제(失題)하여 임의로 시제를 붙인다. 백호가 생선장수를 가장해 일지매의 집에 들어 헛간청에서 하룻저녁신세를 진다. 이를 눈치 챈 일지매의 격조 높은 가야금 곡에, 백호의 옥퉁소 소리가 들렸것다. 이 때 연주곡이 정과정(鄭瓜亭)이 지은 충신연주지곡(忠臣戀主之曲)이었다.
희귀한 곡을 내 연주에 생선장수의 퉁소가 멋진 화음으로 호응했다면 틀림없이 백호라고 생각했다. 한우와 월선에게 익히 들었던 한량이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더 망설이랴. 꿈속에서만 동경해 오던 백호가 바로 자기를 찾아온 곳을. 일지매는 짐짓 시치미를 떼고 은근한 추파를 시 한 구에 실어 보냈더니, 헛청에서 다시 화답이 왔다. 일지매는 마루에서, 백호는 헛간에서 호응하는 시문이다.
‘복희씨적 달도 밝고, 태고적 바람도 맑다고’ 상호 호응을 하더니만 다음 구에선 ‘비단 이불 누구와 함께 덮을꼬’ 했더니 ‘나그네 베갯머리 한 편에 있네’라는 즉흥시에 달빛도 바람소리도 처음 만난 두 시인을 그만 두지는 못했으리라.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창가에는 달도 밝고 태곳적 바람 맑다네, 비단 이불 누구와 덮어 베갯머리 비어있네’ 라는 상상력이다.

================

작가는 평양기생 일지매(一枝梅)와 백호(白湖) 임제(林悌)이다.

【한자와 어구】
窓: 창. 창가에는. 白: 훤히 밝다. 羲皇月: 복희씨 적의 밝은 달.  軒: 마루. 마룻대. 淸: 맑다. 太古風: 태곳적의 바람. 혹은 태곳적의 풍류. // 錦衾: 비단 이불. 誰: 누구. 與共: 함께 덮다. 더불어 공유하다. 客枕: 나그네의 베갯머리. 一隅: 한 모퉁이. 空: 텅 비어 있다. 곧 혼자 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