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단상-노영필]저에게 학교설립을 허락해 주소서
[학교단상-노영필]저에게 학교설립을 허락해 주소서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5.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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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필[광주 운남중 교사]
-서울 인권학원사태를 목도하며-

이사장님 감사합니다.

당신 덕에 변변치 못한 삶이 기사회생했기 때문입니다.
제 실력으로 어찌 이력서 한 번 내볼 수 있었겠습니까?
당신의 배려로 이 학교의 정식 교사가 되었다는 것은 가문에 길이길이 빛날 영광입니다.

옛날, 어느 사립대학 총장님이 운동장을 돌릴 때, 한 바뀌 더 돌자던 어느 교수의 충정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전교조교사들이 학교를 뒤흔들어 놓을 때도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당신은 묵묵히 학교를 지키셨습니다.
그들이 13년 동안 기를 쓰고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려고 해도 국회를 지키는 나라님들이 알아서 막아주니 든든했지요.

우리나라 교육을 살찌운 건 당신 같은 설립자님 덕분 아닙니까!
당신께서 삭막한 모래밭에 혈혈단신 학교를 일으켜 세워 70% 이상 공교육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지금이야 나라 돈이 여유(?)있어 공립학교가 많다지만 옛날은 당신들 아니면 이 땅의 교육을 어찌 감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 시절 어렵사리 일으켜 세운 학교를 누가 감히 손댈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이 없었으면 저희들 생존 또한 어찌 가능했으리오만 이제 등이 따뜻하고 배고픈 시절이 가시니 배은망덕해지나 봅니다.
남들은 탄력적인 근무 시간이라 네시 반이면 끝나지만 저희들은 당신의 고결한 뜻을 지키기 위해 일요일도 나와서 근무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외람된 이야기오나 제 꿈은 학교를 세워보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지천에 널려있는 인재가 IMF 이후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을 모집해 교사로 쓰거나 제가 갖는 인맥으로 사돈네 팔촌까지 동원하면 될 것입니다.

행정실은 세상이 다 협잡판인 데 적당히 들통 안 날 정도 해먹으면 그만이죠.
그까짓 교사들 다루는 방법이야 협박하고 어르면 된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 아닙니까.
그리고 관계요로의 윗분들이야 귀한 자리 만들어드리면 된다는 천하의 비법도 있질 않습니까!
이 보다 좋을 순 없지요.

당신이 가르쳐준 탁월한 비법 중의 비법은 학교를 세 개쯤 운영하면 돈굴리기가 가장 쉽다는 것입니다.
학교가 셋이면 회전자금으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더 이상적인 재단구성은 대학 하나에 고등학교를 둘 정도 운영하면 되지요.
총장님이니 교수님이니 그럴싸한 칭호를 들을 수 있는 대학의 승진기회는 동기부여의 비법 아닙니까.
학부모들이란 애초부터 학교가 무엇인지를 잘 모를 일이고 행여 자식에게 피해가 갈까 나설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교육열이 높다하더라도 살기 바빠 학교운영에 신경 쓸 틈이 어디 있겠습니까!
있다고 하더라도 공부 못한 내 자식에게 혼신의 정성을 쏟아준다는데 간이고 쓸개를 빼주어도 부족할 판에 무슨 트집을 잡겠습니까?

학교기물을 관리하는 요령은 더욱 쉽습니다.
자금회전이 만만치 않을 땐 윗 돌을 빼내어 아랫돌을 괴면 됩니다.
그 동안 유능한 교사들로 잘 단련해 놓으셨으니까요.
명령만 내리면 일사천리로 움직이죠.

학습기자재가 없을 땐 이쪽 저쪽 학교에서 옮겨와 감사의 눈길만 피하면 되지 않습니까. 교육부건 감사원이건 그들이 볼 줄 아는 것은 무엇입니까.
앨범비, 수학여행비, 특기적성비, 체육복값 등 수도 없이 눈에 어른거리는 짭짤한 수입거리 아닙니까!

옛날에야 뺏지, 명찰까지도 단체 구입시켜 쏠쏠한 수입원이 되었지만, 이제 학부모들 앞세워 에어컨값, 자율학습비, 보충수업비를 관리하는 지혜로운 비법으로 여유가 생겼습니다.
큰 것 한 탕 노려 교육재원을 더 튼튼히 확보해야 자립형 사립고도 너끈히 세울 수 있습니다.

1998년 전교조결성 이후 13년간 기가 막히게 학교를 지켜온 이사장님이 부럽습니다.
전교조 교사들이 큰소리를 치지 못하게 해놓았으니까 말입니다.
노사정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다 하기 나름입니다.
그렇다고 저같이 은혜 입은 자들이 투정한 번 부리던가요.

이사장님 죄송합니다.

비법을 어깨너머로 터득하고 보니 간사한 인간이라 슬그머니 욕심이 생깁니다.
어느 순간 훌륭하게 몸에 익혀졌는지 행복하기만 합니다.
어서 이 기량을 뽐내고 싶습니다.

저도 이렇게 배운 기술이 십수 년인데 학교 운영을 끝내주게 잘할 수 있습니다.
교육부장관님께서도 이런 저의 충정과 노력에 탄복하셔서야 합니다.

제발 학교인가를 허가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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