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8) 문안중근보국수사(聞安重根報國讐事)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8) 문안중근보국수사(聞安重根報國讐事)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9.02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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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지 않고 이런 좋은 소식을 들으니

일본이 우리를 침범한 횟수만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인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수많은 목숨이 나라를 위해 올곧게 바쳐졌다. 어떤 이는 맨손으로 싸우고 어떤 이는 적진에 들어가 나라의 긍지를 심으면서 적정(賊情)을 탐지하여 본국에 알리는 염탐도 마다하지 않았다. 침략의 수괴(首魁) 이토오히로부미가 만주 하얼삔역에 도착한다는 소문을 듣고 정의의 사나이 안중근 청년이 정확하게 명중하여 사살했다는 즐거운 소식을 듣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聞安重根報國讐事(문안중근보국수사) / 창강 김택영

한이 맺힌 평안 장사 두 눈을 부릅뜨고

나라 원수 죽이는 것 양 한 마리 죽이듯이

희소식 전해 듣고 나서 춤추면서 노래하네.

平安壯士目雙張    快殺邦讐似殺羊

평안장사목쌍장    쾌살방수사살양

未死得聞消息好    狂歌亂舞菊花傍

미사득문소식호    광가란무국화방


내 죽지 않고 이렇게 좋은 소식 들었으니(聞安重根報國讐事)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1850∼1927)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평안 장사가 두 눈을 부릅뜨고 / 나라의 원수를 죽이는 것이 양 한 마리 죽이는 것 같으니 / 내 죽지 않고 이런 좋은 소식을 들으니 / 국화 곁에서 미친 듯 노래하고 어지럽게 춤추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안중근이 나라 원수를 갚은 일을 듣고]로 번역된다. 20세기초 들어서서 나라가 극도로 어지러웠다. 을사늑약(1905)이 체결되어 나라의 장래를 깊은 통탄에 빠졌다. 중국으로 망명했던 안중근이 만주 하얼삔역에서 원수의 수괴를 쏘아 죽여 원수를 갚았다는 통쾌한 소식이 있었다.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다.
시인 또한 덩달아 춤을 모습도 상상이 된다. 평안 장사가 두 눈 부릅뜨고, 나라의 원수를 죽이는 것 양 한 마리 죽이는 것 같다고 했다. 평안장사는 안중근을 가리킨다. 그가 두 눈을 부릅뜨고 나라의 원수를 죽이는 자체가 한 마리 양을 죽이는 것 같이 쉽게 죽였으니 그 아니 반갑지 않겠는가. 1909년 10월 26일 대한 남아의 함성이 메아리쳤다.
화자는 자신이 죽지 않고 이같이 기쁜 소식을 듣는다는 시심을 담는다. 지금껏 죽지 않고 이런 좋은 소식을 들으니, 국화 곁에서 미친 듯 노래하고 어지럽게 춤춘다고도 했다. 국운이 다 하는 비참한 모습을 보고 그 또한 죽고 싶은 심정을 간직했던 아픈 역사의 한 마디를 듣는 것 같다. 국화는 늦가을까지 피는 꽃으로 우리 민족의 상징성의 의미를 내포한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평안장서 부릅뜨고 나라 원수 죽였구나, 좋은 소식 들었으니 노래하고 춤을 추세’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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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1850∼1927)으로 조선 후기의 문인, 학자이다. 17세에 성균초시에 합격하기도 하였으나, 개성인을 등용하지 않는 조정의 정책과 무반 가계라는 신분상의 제약 때문에 급제하지 못하였다. 20대에 서울에 와서 이건창과 교유하였다.

【한자와 어구】
平安: 평안도 壯士: 장사. 안중근을 가르킴. 目雙張: 두 눈을 부릅뜨다. 快殺: 흔쾌히 죽이다. 邦讐: 나라의 원수, 이토히로부미. 似殺羊: 양을 죽이는 것 같이 하다. // 未死: 죽지 아니하고, 得聞: 들었다. 消息好: 좋은 소식. 狂歌亂舞: 미친듯 노래하고 어지럽게 춤추다. 菊花傍: 국화 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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