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7) 강화양란(江華洋)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7) 강화양란(江華洋)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8.2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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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 달아나고 임금께서 근심하니

강화도는 고려를 지키는 요충지인 동시에 한양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왜구를 물리치는 요새지이기도 했다. 지금도 보전되어 남아있는 초지진 광성보 등이 그 때 일을 말해준다. 수많은 양민들이 싸우다 죽어갔고, 의병의 푸른 목숨들이 초개와 같이 숨을 거둔 곳이 강화도다. 프랑스 함대가 쳐들어와 양민을 학살했던 혼적이 지금도 생생한데, 그 때 약탈해간 외규장각(外奎章閣)은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게 된다. 이토록 어려운 시기에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江華洋亂(강화양란) / 의암 유인석

태평성대 오래도록 편안히 지냈는데

서양인 침범소식 강화에서 전해오네

선비들 불끈 일어나 나라은혜 갚아야지.

昇平世久恬嬉存    報急沁城洋祲昏

승평세구념희존    보급심성양침혼

都民鳥散震宸念    壯士雲興重國恩

도민조산진신념    장사운흥중국은
 

백성들 줄행랑쳐 달아나고 임금은 근심하니(江華洋亂)의 율시인 전구의 칠언체이다. 작자는 의암(毅庵) 유인석(柳麟錫:1842~1915)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태평성대 오래도록 편안하게들 지냈는데 / 양놈들이 침범했다는 소식이 강화도에서 전해졌네 / 백성들 줄행랑쳐 달아나고 임금께서 근심하니 / 선비들이 불끈 일어나 나라 은혜 갚으려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강화에서 발생한 서양인 난동]로 번역된다. 병인년(1866) 8월에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가 프랑스 선교사를 처형했다는 구실을 삼아 조선을 침략했다. 지금의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까지 왔다가 돌아갔다. 병력을 더 보강한 프랑스는 9월에 재침입해서 서적 등을 약탈해 갔다. 온 나라가 흉흉했고 피난가거나 강화하자는 논의가 많은 시기가 시적이다.
시인은 영정시대가 지나면서 조선이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었음으로 시상을 일으킨다. 태평성대 오래도록 편안하게들 지냈는데, 양놈들이 침범했다는 소식이 강화도에서 전해졌다고 했다. 그 만큼 방비에 소홀했음을 암시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약한 모습도 강하게 보여야 함에도 더욱 약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화자는 백성들이 달아나고, 임금은 앉아 근심하는 모습을 상상해 낸다. 백성들 줄행랑쳐 달아나고 임금께서 근심하니, 선비들이 불끈 일어나 나라 은혜 갚으려한다는 점으로 들고 있다. 그렇지만 꺼져가는 나라의 비운을 보고 선비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는가. 분연히 일어선 선비들의 모습에 안심하는 마음이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태평성대 지냈는데 양놈 침범 전해졌네, 임금께서 근심하니 선비 모두 일어나세’ 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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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의암(毅庵) 유인석(柳麟錫:1842~1915)으로 한말의 의병장이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의병을 일으켰고, 1909년 블라디보스톡에서 십삼도의군통도총재에 추대되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에 독립운동을 계속하다 봉천성 관전현에서 병사하였다. 저서로 <소의신편> 등이 있다.

【한자와 어구】
昇平世: 태평성대. 久: 오래도록. 恬嬉存: 편안히 지내다.  報急: 급히 전해지다. 沁城: 성내에 스며들다. 洋祲昏: 서양인들 침범해 혼미해짐. // 都民鳥: 백성들. 散震: 벼락치듯 흩어지다. 宸念: 궁궐은 걱정하다.  壯士: 장사들. 선비들. 雲興重: 구름같이 거듭 일어나. 國恩: 나라의 은혜 갚으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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