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화순농부에 안겨진 상처
한 화순농부에 안겨진 상처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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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을 열었을 때 그곳은 암흑이었고 코를 들 수 없을 정도의 냄새가 진동하였다.
불을 켜자 낯선 나를 보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너덜너덜 찢어 버린 옷은 간신히 걸쳐 있다. 빛을 싫어해서 하나 있는 작은 창문은 널빤지로 못질되어 있고 무엇이든 찢어 버리는 유일한 소일거리 때문에 방바닥은 시멘트 그대로이고 벽지는 왕골로 만들어져 있다.
그의 가족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배려였던 것 같다.

©영상매체연구소

야만의 총구 앞에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는 '저항해야 한다'와 조금만 버티면 같은 피를 나눈 동포들이 자신들을 돕기 위해 달려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었던 5월의 전사들에게 그들을 돕기 위해 달려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듯이 16년 동안 그를 위해 우리가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으며 그는 떠났고, 광주를 기억하기 싫은 과거의 역사로 취급하듯 그의 삶은 우리의 5월의 축제에 어울리지 않은 알려지지 않아야 할 추한 모습일 뿐이었다.

©영상매체연구소

그러나 가족만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80년 5.18에 재수생이던 아들을 잃고 괴로워하는 남편의 모습을 끝끝내 16년 동안이나 지켜 주었던 부인,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남편을 안쓰러움으로 아들을 대하듯 보살피던 아내, 그러나 그런 남편마저 떠나자 의지할 곳이 없어진 부인은 결국 세상과의 끈을 조금씩 놓기 시작했다.
상처가 될까 봐 차마 만나 보지 못했던 다른 자녀들은, 부인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지만 그들 또한 마지막까지 아버지를 버리지 않았다.
상처는 80년 당시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남겨진 모두에게 만들어져 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그렇게 치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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