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실려 가다
구름에 실려 가다
  • 문틈 시인
  • 승인 2019.08.20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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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어딘가에 구름을 만드는 공장이 있는가보다. 갖가지 모양을 한 구름 조각들이 푸른 하늘에 떠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분명 어딘가에 구름공장이 있는 성싶다. 그 구름공장에서 마치도 지상에 있는 모든 물상들의 모양을 시늉해서 만든 것처럼 보인다.

구름공장에서 하늘로 나온 구름들은 하늘 멀리 어디로인지 흘러간다. 어떤 구름은 대궐 같이 생겼고, 다른 어떤 구름은 용 모양 같다. 기기묘묘한 모양을 한 구름들이 떠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구름이 저 구름과 만나 합쳐서 더 큰 구름이 되기도 하고, 커다란 구름이 갈라져서 여러 개의 조각 구름으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수시로 모양을 바꾼다. 빛깔도 새하얀, 하얀, 그냥 흰색으로 다양하다. 더 자세히 바라보고 있으면 구름들은 흘러가면서 솜뭉치처럼 조금씩 흩어진다. 종당엔 구름들은 실낱같이 되었다가 푸른 하늘 속으로 사라져간다. 구름이 양떼처럼 떠다니던 하늘은 어느새 구름 한 조각도 보이지 않는다. 구름의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다.

갑자기 구름이 사라진 하늘을 보며 나는 이것이 꿈인가 한다. 실체가 있으면서도 없는, 실체가 없으면서도 있는 구름을 바라보노라면 그 구름에 실려서 하늘을 떠돌다가 나도 구름을 타고 하늘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어진다.

구름들의 세상은 자유자재한 세상이다. 생겼다가는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는 생겨난다. 정처없이 하늘에 떠가는 구름은 지상의 모든 것들, 나무도, 풀도, 강아지도, 새도, 그리고 사람도 끄트막에는 구름처럼 흘러서 어딘가로 가는 것이라고 비유하는 것만 같다.

구름은 마치 지상에 자취라도 남기려는 듯 그림자를 들판에, 언덕에 떨어뜨리면서 지나간다. 구름 그림자는 강을 건너고 마을을 지나 산을 넘어서 거침없이 간다. 구름이 가는 곳에 그림자 말고 뉘라서 따라갈 수 있으랴. 그림자마저도 구름과 함께 가뭇없이 사라진다.

떠돌다가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떠돌다가…. 한정없이 구름을 보고 있노라면 윌리엄 워즈워즈의 싯귀대로 ‘나는 외로이 구름처럼 방황하였노라’가 실감나게 떠오른다. 구름은 방황한다.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로 저리로 흘러간다. 나는 하늘과 지상의 경계에서 자유로이 떠다니는 하얀 구름을 사모한다. 그리고 무시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구름의 일생을 목격하며 구름을 이해하려고 한다.

옛사람들은 구름을 나보다 더 잘 알았다. 구름을 철학하듯 바라보았다. ‘생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난 것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진 것이다’(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라고 지극한 깨달음을 구름에 의탁해서 알아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 구름을 보며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구름의 시인 헤르만 헤세는 ‘긴 여로에서/방랑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스스로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구름을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해나 바다나 바람과 같은/하얀 것, 정처 없는 것들을 나는 사랑한다./고향이 없는 사람에게는/그것이 누이들이며 천사이기 때문에.’라고 노래한다.

내게 얼마나 서늘한 기쁨을 주는 한 편의 시인지 모른다. 마치 헤세의 시도 구름에 실려 어디로 둥둥 떠가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울타리, 강, 산, 국경을 넘어 이념을, 사상을 넘어 저, 저, 오직 자유함만이 있는 구름 나라의 시민이 되고 싶다.

구름이 떠있는 높이에서 지상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는가보다. 그 누군가가 혹은 구름을 비로 만들어, 혹은 구름을 눈으로 만들어 지상으로 내려 보내는 성싶다. 그것은 하늘과 땅의 오랜 관계맺음이다.

홀연히 나타나 사라지는 구름 뒤에는 그렇듯 자연의 호흡이 있다. 그 호흡이 바람을 내어 구름을 움직이게 한다. 바람도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구름의 행로를 알 수 있으랴. 돛을 단 배처럼 구름은 바람에 기대어 정처 없이 하늘을 방랑하는 것이다.

어떻게 구름은 저 높이에 떠 있는 것일까. 한 오리 새털도 지상에 떨어지는데 구름은 늘 하늘에 걸려 있는 것일까. 호흡같은 바람이, 공기가 구름을 받들고 있어서다. 구름의 입자는 아주 작아서 1밀리그램의 1백분의 1정도밖에 안된다. 입자 1백만개가 모여야 겨우 구름 1그램이 된다. 그래서 구름은 조용한 공기의 흐름에도 떠올려져 있다.

구름은 비유다. 우주 만상의, 생과 사의, 지상과 천국의, 내가 상상하는 모든 것의 비유다. 그것은 언젠가 소망을 태우고 올 마차같은 것이다. 돌아다보는 구름에 내 마음이 실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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