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와 함께 한 여름
제비와 함께 한 여름
  • 문틈 시인
  • 승인 2019.08.14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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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날씨는 후텁지근한데 버스는 오지 않는다. 버스가 오는가 하고 고개를 빼고 연신 저쪽 길을 바라보고 있는데 4차선 도로 위로 새 한마리가 아주 빠르게 이쪽으로 날아오는 것이 눈에 뜨였다.

날아오는 새는 바로 내 눈 앞에서 잽싸게 진로를 꺾어 길가 보쌈집으로 휙 날아 들어간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길이 따라가 보쌈집 문 네모난 전등 위 제비집에 달라붙어 있는 어미제비를 발견하였다.

걸음을 옮겨 차양막 아래로 가서 제비집을 가까이 바라보았다. 새끼제비는 세 마리인데 모두 목을 길게 빼고 흔들며 입을 벌려 먹이를 달라는 소리를 낸다. 어미제비는 새끼 한 마리 입에 부리를 넣어 먹이를 주고는 쏜살같이 차양막 밖으로 빠져나와 마치 스케이트 선수처럼 두 날개로 공기를 가르며 공중으로 날아간다.

날아가는 모습이 어찌나 빠르고 날쌘지 찬탄을 금치 못하겠다. 오랜만에 제비를 보게 되어 반갑기도 해서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있는데 금세 또 다른 어미제비가 금방 같은 모습으로 새끼제비들에게 날아와 먹이를 주고는 날아간다. 부부제비가 틀림없다.

나는 내가 탈 버스를 보내고는 한참 동안 더 그 자리에 서서 어미제비 두 마리가 새끼들에게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다 주는 모양을 지켜보았다. 나 말고는 아무도 제비에게 관심이 없는 듯 사람들은 제비집 밑 인도를 분주히 오고간다. 모두들 제 하루 일로 바쁜 모양이다.

어미제비는 무엇인가를 물어 와서 새끼제비 입에 넣어주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물어온 것 같지 않을 정도로 먹이의 정체가 눈에 뜨이지 않는다. 모기 같은 것을 잡아온 것 같기도 한데, 모기가 대체 무슨 먹이가 되겠는가싶다.

내가 어릴 적에 초가집으로 날아드는 어미제비는 잠자리 같은 제법 큰 먹이를 잡아왔었는데 도시 제비에게는 그런 큰 먹이를 구할 수 없는가싶다. 제비는 멸종은 아니지만 희귀종이 되어가고 있다.

자연환경이 제비에 비우호적으로 변하고 있어서 제비가 집을 짓는 것부터 새끼제비의 먹이를 잡는 것까지 어느 한 가지도 수월한 것이 없다. 농약 탓이다. 농약 때문에 제비 먹이가 되는 벌레들이 드물어졌다. 내가 도시에 살면서 오랜만에 제비를 보게 된 것도 그 탓이다.

제비 한 마리가 해충 몇 만 마리를 잡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나 제비 개체수가 줄어드는 환경이 못내 안타깝기만 하다. 빨랫줄에 나란히 앉아서 조잘대는 제비 떼들은 얼마나 정겨웠던가.

제비는 여느 새들과는 다르다. 날개가 특화되어 있어서 종횡무진 대기를 가르며 날렵하게 날아다닌다. 제비만큼 자유자재로 공중을 휘저으며 나는 새도 드물 것 같다. 제비는 하루에 350번이나 먹이를 물어다 새끼들에게 준다고 한다.

내가 지켜보는 한 20여 분 새에도 어미제비는 쉬지 않고 계속 들락날락 먹이를 물어 날랐다. 어미제비는 어두워가는 저녁에도 먹이를 물어왔다. ‘당신은 제비처럼 반짝이는 날개를 가졌나’라고 내게 묻기라도 하는 듯이.

나는 보쌈집 문 위에 있는 제비들이 생각날 때면 마을버스를 타고 며칠에 한번 부러 제비를 보러갔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어느 무덥던 날 가보니 제비집이 텅 비어 있다. 벌써 새끼제비들이 다 성장하여 날아간 것일까.

나는 보쌈집 문을 열고 들어가 손님 응대를 하는 종업원에게 대뜸 물었다. “여기 제비새끼들이 다 날아갔나요?” “아니요, 밤에 들어와요.” “네?” “낮에 나갔다가 밤에 온답니다.” 그러니까 이제 새끼제비들은 비행 훈련에 들어간 것이다. 벌써 새끼제비들이 날게 되었구나.

어미제비야, 새끼제비야, 장하다. 다음날 저녁 나는 다시 그 보쌈집을 또 찾았다. 이제 제비가 무사히 다 남쪽 나라로 날아갔는가 해서다. 시간은 밤 9시30분. 제비 가족들이 제비집에서 서로 어깨를 맞대고 곤히 자고 있었다. 보쌈집은 아직도 하루 장사가 끝나지 않았는지 음식을 만들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뒷이야기. 이틀 후 가보니 제비 가족이 떠나갔단다. “내년 봄에 또 올거예요.” 그러면서도 보쌈집 종업원의 표정은 못내 서운한 티가 역력하다. 제비는 옛날 집으로 새봄을 데리고 올 것이다. 그때도 나는 제비를 환영할 참이다.

보쌈집 제비 일가는 이 나라를 떠나고, 보쌈집은 날마다 손님을 기다리고, 나는 평소처럼 마을버스를 기다린다. 빈 제비집에서 새끼제비들의 먹이 달라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8월의 폭염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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