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일 무역분쟁과 일본의 내심(內心)
한ㆍ일 무역분쟁과 일본의 내심(內心)
  • 주종광 법학박사/공학박사
  • 승인 2019.08.07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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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종광 법학박사/공학박사

일본은 한국을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일본에게 그렇게 당하고서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한국의 대일무역 누적적자가 708조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강소기업이 제대로 성장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 아베내각은 한국이 산업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밖에 없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 기회에 한국에서 강소기업이 성장하게 되면 청년일자리 문제 역시 함께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일본은 한국정부가 만지작거리는 패가 생각보다 다양하고 파괴적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의 급을 낮춰보면 상대의 진짜 힘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일본 국내정치가 한계에 부딪치면 그 해결책으로 ‘정한론’이 꼭 등장하곤 한다. 정한론(征韓論)은 일본의 국내정치 상황이 한계에 도달하면 조선정벌을 통해 해결하는 것을 일컫는 의미로 사용된다.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를 통일했으나, 부하의 배신으로 사망하게 된다. 그의 뒤를 이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국을 통일하고 국내정치 상황이 어렵게 되자, 내치(內治)의 어려움을 외치(外治)로 돌리기 위해 조ㆍ일(朝ㆍ日)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된 정치적 배경이다. 첫 번째 ‘정한론’인 것이다.
두 번째 정한론은 1873년 무렵에 일어났다. 메이지정부의 중앙집권화로 인해 몰락한 무사계급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서 일본정계에는 정한론 논쟁이 일어났다. 이 논쟁은 조선 침략 자체에 대해서 논쟁한 것이 아니라 조선침략의 시기를 놓고 벌어진 대립이었다.
1945년 8월 15일 정오 일본인들은 전쟁을 종식시키겠다는 천황의 결단만이 강조된 쇼와천황의 종전조서를 소위 ‘옥음방송’으로 듣게 된다. 1946년 제정된 이른바 평화헌법 제9조는, 전쟁을 영구히 포기하며, 군사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1949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하였고, 1950년에는 중ㆍ소 동맹조약이 체결되었으며,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이와 같은 냉전 상황에서,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하여 일본의 주권을 회복시켜 주었다. 평화헌법 체제안에서 경찰예비대를 창설했고, 후에 자위대가 된다. 그런데 일본의 현실주의자들은 이와 같은 헌법상의 제약은 일본이 군사대국이 될 수 없고 나아가 미ㆍ일 동맹안보체제를 제대로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최근 일본은 한국에 대하여 일부품목에 대한 수출규제조치를 취하더니 아예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하면서, ‘무역분쟁’을 일으켰다. 일견(一見) 세 번째 ‘정한론’인 셈이다. 더군다나 물건을 팔 사람이 살 사람에게 까다롭게 굴겠다며 나서는 희안한 일까지 벌이면서 말이다. 당장 2020년 일본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이 코앞인데 ‘무역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한국을 지금 꺾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한일 무역분쟁을 일으킨 내심(內心)은 일본의 국내정치가 아닌가 싶다. 국내정치나 정당정치의 기본은 갈등의 편향적 동원이다. 일본이 편향적으로 동원하고 싶은 갈등은 무엇일까? 최근 북한의 미사일발사와 더불어, 남북한과 미국이 긴밀하게 연결되는 북한 이슈는 일본 국내정치에서 갈등을 편향적으로 동원하기에는 부족했을 수도 있다. 삼권분립이 확실한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배상판결에 대하여 일본정부는 불만을 표출했고, 급기야는 한국을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하는 등 ‘무역분쟁’을 촉발시켰다. 한국정부도 즉각 일본을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했으며, 한국정부는 당연히 이에 상응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한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크게 일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일본여행 보이콧 등으로 일본 역시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일 양국 간에는 갈등이 편향적으로 동원되기 시작한다. 한일 간에는 감정의 골이 상당히 깊어질 것이다. 이 지점이 일본이 노리는 지점일 것이다. 일본여론이 급격히 보수ㆍ우경화되면서 표의 결집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이 자명하다. 그동안 평화헌법 제9조의 개정에 반대하면서 바로 보통국가가 되는 것을 반대하던 여론을 돌릴 수 있게 된다는 구도를 일본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이미 계산에 넣었을 것이다. 일본이 그리는 ‘헌법이 있는 아름다운 풍경화’는 무엇일까? ‘평화헌법 제9조가 개정된 아름다운 풍경화 속의 일본’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쟁도 할 수 없는 군대를 가지고서는 일본방위를 장담할 수 없으니 당장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가 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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