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손
부끄러운 손
  • 문틈 시인
  • 승인 2019.08.07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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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로 존경하는 사람은 의식주와 관련한 것을 생산하는 사람들이다. 농사꾼, 어부, 광부, 공장노동자, 건설노동자 같은 자기 몸을 써서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이다.

생각이 없는 10대였을 때는 그렇게 세상을 보지 않았다. 외려 그런 사람들은 안중에 두지 않고 땀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 입이나 펜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을 우러러보았다. 그런 자리를 마땅히 내가 가야 할 곳으로 목표 삼았다.

내가 한참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진정으로 알게 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정치인, 법조인, 관료, 서생(書生), 뭐 이런 따위 직업의 종사자들을 높이 보고 그런 쪽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것을 선망했다.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내가 이렇게 뒤집어 생각하게 된 것은, 만일 이 세상 사람들이 아주 선해서 무정부 상태로도 잘 지낼 수 있게 된다면 대통령, 국회의원, 판검사, 기자 같은 사람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 무정부 상태의 대동 세상에서 없어서는 아니 될 직업군의 사람들은 앞서 예를 든 농사꾼, 어부, 공장노동자, 건설노동자 같은 사람들이다.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든 최후까지 없어서는 아니 될 직업의 이들 종사자들을 나는 존경하게 된 것이다.(예술, 철학, 종교 이야기는 일단 접어둔다.)

그렇긴 하나 세상은 대동세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별로 존경하지 않게 된 정치인, 법조인, 서생들이 필요하다. 그들은 노동생산직과 동등하거나 아랫질이어야 맞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도 있어야 한다. 아니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을 요리한다. 이것이 현실의 구조다.

그런 사람들의 한마디 지시나 판결이나 글이 권력이 되어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진짜로 세상 마지막까지 절대 필요한 땀 흘리는 사람들은 땀 안 흘리는 사람들한테서 ‘을’ 취급을 받고 산다.

거꾸로 된 세상에서 나는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땀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고 나서 비로소 이마에 땀 흘리며 몸을 움직여 의, 식, 주를 생산을 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뒤늦게 겨우 진짜 세상을 보았다.

나는 어떠한가. 평생을 땀 흘리며 쌀 한 톨 생산한 적이 없으며, 물고기 한 마리 잡은 일도 없고, 석탄 한 덩이 캔 일이 없고, 공장에서 몽키 스패너를 들고 일한 적도 없고, 그리고 다리 건설에 울력을 써본 적도 없이 살았다.

내가 해온 일이란 해도 좋고 안해도 무방한, 사회에 그닥 도움도 될 것 같지 않은 글을 써서 먹고 살았다. 몇 십 년을 그랬다. 고백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을 마치 대단한 성취나 행운처럼 여기고 살았다. 이마에 땀 흘리지 않고도 먹고 살게 된 것을 의젓하고 당당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진실로 고백하지만 나는 몸을 써서 벌어먹고 사는 그 사람들한테 미안함, 죄스러움, 부끄러움을 느낀다. 손에 흙을 묻히고, 쇠뭉치를 들고, 철모를 쓰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흘리는 피같은 땀을 생각할 때 그들이야말로 우리를 이 땅에 내보낸 자연의 요구에 응한 사람들이다. 내 어찌 존경을 바치지 않으랴.

강철은 이념이나 흰 손으로 단련되는 것이 아니라 무쇠 같은 팔뚝의 힘으로, 땀으로, 단련되는 것이다. 육체를 동원하여 육체를 위하여 오늘도 삽과 해머로 노동하는 순정을 나는 경애한다. 내 생각은 그렇거니와 현실 세상은 유감스럽게도 입과 펜이 압도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괴테가 말했다.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진정한 맛을 알지 못한다.’ 인생의 진정한 맛을 알지 못한 사람들, 이른바 ‘손바닥이 흰 사람들’은 적어도 내게는 더 이상 웃질의 사람이 아니다.

그렇건만 나는 지금 너무 멀리 와버렸다. 지금은 생업에서 은퇴하고 은행에서 개인연금 얻어먹고 사는 한량 신세다. 흙을 고를 수도, 시멘트 포대를 져 나를 수도 없다. 내가 생각을 바꾸고 사람들이 무지렁이라고 내치던 노동자들을 진심으로 내가 존경하게 된 것만으로 나는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내가 먹는 밥 한 그릇, 내가 먹는 조기 한 마리, 내가 사용하는 손톱깎이, 이것들을 생산한 과정에 나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다. 그것들을 만든 사람들이 있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돈을 주고 사면 저절로 내 것이 되는 줄 알았다.

사람은 피땀 흘리는 육체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나는 믿는다. 진정한 기도는 육체의 바침이다. 논에서 농군의 땀이 결실하고, 공장에서 노동자의 피가 끓는다. 노동자를 주류로 보자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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