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3) 백발자조(白髮自嘲)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3) 백발자조(白髮自嘲)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8.0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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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도 다투면서 북망산천 가려하네

백발을 보면 허무함을 느낀다. 무엇을 하면서 이렇게 늙었단 말인가 하고 지난 시간을 후회한다. 거울 앞에 서서 흰머리 난 자신을 쳐다본다. 주검을 향해 한 걸음 두 걸음 걸어가고 있다는 허무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요즘은 죽음 연습도 한다고 한다. 수의(壽衣)도 입어보고, 관(棺)에도 들어가 보는 이른 바 죽음체험이다. 그렇더라도 시인은 백발을 보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백발도 주검과 함께 하여 북망산에 갈거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白髮自嘲(백발자조) / 침우당 장지완

늙은 증표 하얀 머리 남들은 싫어하나

한참 보면 잠시 머문 신선 같지 않더니
 
흰 머리 북망산 갈 길 살아왔던 흔적이.

人憎髮白我還憐    久視猶成小住仙

인증발백아환련    구시유성소주선

回首幾人能到此    黑頭爭去北邙阡

회수기인능도차    흑두쟁거북망천

 

검은 머리도 다투며 북망산천 가려하네(白髮自嘲)로 제목을 붙여본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침우당(枕雨堂) 장지완(張之琓:1806~1858)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남들은 하얀 머리 싫어해도 나는 좋아한다네 / 한참을 보면 잠시 머무는 신선 같지 않더이까 // 둘러보면 그 몇이나 이 때까지 살았던가 / 검은 머리도 다투어 북망산천 같이 갈 것을]이라 번역된다.

시제를 직역하면 [흰 머리 보면서 스스로 웃네]로 번역해 본다. 많은 사람들이 백발이 된 하얀 머리를 보면서 시상을 떠 올리는 경우가 많다. 다른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것은 백발이 자라나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인생의 후회와 회한이 젖는 것이 보통인데 이 작품은 그 반대의 현상을 보인데서 시적 배경이 되고 있다.√ 그렇듯이 시인은 첫구절부터 자신이 범상하지 않는 사람임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거울을 보는 다른 사람들은 다 백발을 싫어하지만 자기만은 좋아한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인은 어느 새 훌쩍 커버린 백발 때문에 자신이 신선 같다는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는 점도 시적인 특징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화자는 자신이 백발이 되도록 오래 살았음을 자신 만만해 한다. 백발은 흑발인 검은 머리도 다투어서 북망산에 갈 것이라는 시상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백발은 당연히 북망산을 같이 가겠지만, 어려서부터 검은 머리까지도 언젠가는 같이 가야할 북망산 길에 동행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밝힌다. 이런 점을 감안하고 보면 여느 작품에서 볼 수 없는 시상의 탁월함을 찾는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하얀 머리 좋아한데 신선 같지 않더이까, 그 몇이나 살았던가 검은 머리 같이 갈 걸’ 이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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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침우당(枕雨堂) 장지완(張之琓:1806~1858)으로 조선 후기의 학자이다.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웠으나 뒤에 이학서의 문인이 되었다. 과거에 뜻을 버리고 학문에 열중하였다.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돕고 마을 풍속을 교화하는 데 힘썼다. 저서로 <침우당집> 6권이 있다.

【한자와 어구】

憎: 미워하다. 還憐: 도리어 사랑하다. 久視: 늙지 않고 오래 삶. 小住仙: 인간 세상에 잠시 머물러 산다는 신선. // 回首: 머리를 두르고 돌아보다. 幾人: 몇 사람. 到此: 지금까지 살다.  黑頭爭: 검은 머리가 다투다. 去: 가다. 죽다. 北邙阡: 북망산. 예전의 공동묘지나, 결국 ‘죽는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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