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2) 우음(偶吟)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2) 우음(偶吟)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7.17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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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으로 가야만 고향으로 가는 길인고

고향을 생각하면서 짓는 시가 많다. 그만큼 고향은 향수와 더불어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다. 고향은 따스한 봄과 더불어 뗄 수가 없는 어휘인 지도 모르겠다.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따스한 봄소식을 맞이했던 때, 그 봄이 시인의 가슴 속에 뭉클하게 남아 일렁거리게 했다면 깊은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찐한 감정으로 남은 시심을 시인묵객이 어디 가만 둘 수 있었겠는가. 봄소식과 함께 고향길 걷던 때를 생각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偶吟(우음) / 약헌 홍현주

지저귄 새 울음에 나그네 꿈 깨어나니

불현듯 고향 생각 봄 나무에 맴도는데

꽃잎이 빈산에 가득 고향 길이 어딘가.

旅夢啼鳥喚      歸思繞春樹

여몽제조환      귀사요춘수

落花滿空山      何處故鄕路

락화만공산      하처고향로

 

어느 곳으로 가야만 고향으로 가는 길인고(偶吟)로 번역되는 오언절구다. 작자는 약헌(約軒) 홍현주(洪顯周:1793~1865)로 순조의 친 여동생 숙선옹주(1793~1836)의 부군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새 울음에 나그네 꿈 깨어나니 / 고향 생각은 봄 나무를 맴도는구나 // 떨어지는 꽃잎은 빈산에 가득하니 / 어느 곳으로 가야만 고향으로 가는 길인고]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우연히 짓다]로 번역된다. 글쓴이의 부인이 된 숙선옹주(1793~1836)는 정조의 서2녀로 어머니는 좌찬성 박준원의 딸로 수원박씨다. 옹주는 순조의 친 여동생으로 순조4년 12세의 나이에 시인인 홍현주에게 하가(下嫁)하였다 한다. 남매가 얼마나 가깝게 지냈던지 순조가 가끔 어가를 돌려 여동생 집에 들렸던 것으로도 알려진다.

시인은 지금 시골의 전경을 보면서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다. 새 울음에 그냥 취했던 꿈에서 깨어나고 고향 생각은 봄에 움돋는 나무에 맴돈다는 시상을 일으킨다. 깊은 산속에 들었던지 새가 울고 나니 불현듯 나그네의 꿈이 깼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향 생각도 물씬 났을 것이다.

화자는 무릉도원에서 자연에 취해 그만 꿈을 꾸고 있음을 엿보게 된다. 떨어진 꽃잎은 온 산을 가득 채우니 어느 곳으로 가야 내 고향 길인지 분간할 수 없다고 읊고 있다. 불현듯 떠오른 고향생각은 춘수(春樹, 봄 나무)에 가득하다는 시상 속에서 고향 가는 길을 찾지 못해 서성이고 있다.

자연을 보면서 한 편의 산수화를 그려 가고 있는데, 아련하게 떠오르는 고향길을 물어서 찾아가는 나그네를 본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나그네 꿈 깨어나니 고향생각 맴도는구나, 낙화 꽃잎 빈산 가득 고향 길이 어디인가’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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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해거재(海居齋) 홍현주(洪顯周:1793~1865)로 조선 후기 정조의 부마이다. 정조의 둘째딸 숙선옹주와 혼인하여 영명위에 봉하여졌다. 1815년(순조 15) 지돈녕부사가 되었다. 문장에 뛰어나 당대에 명성을 떨쳤다.

【한자와 어구】

旅夢: 나그네가 객지에서 꾸는 꿈. 啼鳥喚; 새가 울어 외쳐 부르다. 歸思: 고행생각. 繞春樹: 봄나무를 맴돌다. // 落花: 꽃이 떨어지다. 滿空山: 빈산에 가득하다. 何處: 어느 곳. [何]로 인하여 이는 의문사의 문장임. 故鄕路: 고향길, 고향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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