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대로 살기
매뉴얼대로 살기
  • 문틈 시인
  • 승인 2019.07.17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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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모기만큼이나 성가신 놈이다. 그 쬐그만 놈이 날기는 매우 잽싸서 손으로는 쉬 때려잡을 수도 없다. 겨우 파리채 같은 것으로 잘 조준하여 덮치면 겨우 잡는 정도다. 파리는 그렇게 사람한테서 죽는 것이 일과다. 아무런 동정도 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다.

파리는 그렇다치고 엠하니 죽어가는 아까운 사람들도 있다. 신문을 보면 전국 어디선가는 죽어서는 안될 목숨들이 사소한 잘못으로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다. 비통하고 억울한 죽음이다. 마치 파리 목숨처럼.

며칠 전만 해도 그렇다. 예를 들어보면 서울 강남에서 재건축을 하려고 5층짜리 건물을 철거하는 공사장 옆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곳을 지나던 승용차들 위로 건물이 붕괴해 무너졌다. 차에 타고 있던 한 사람이 죽고, 다른 한 사람은 중상을 입고, 또 다른 두 명은 경상을 입었다. 죽은 사람은 예비신랑과 함께 결혼반지를 찾으러 가던 예비신부였다.

대체 이런 일이 어찌 오이시디(OECD) 국가에서도 상위권에 든다는 한국에서 일어난단 말인가.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그리며 차를 몰고 나갔던 사람이 건물 붕괴에 파묻혀 죽을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날 그 시각에 그곳을 지나간 것이 죄라도 된단 말인가.

대체 이런 참사가 말이나 되는가. 이런 분통이 나는 사고가 비일비재하다. 비가 온 뒤 전선줄이 땅에 늘어져 행인이 지나가다 감전사하지를 않나, 떨어지는 간판에 다쳐 죽지를 않나, 그리고, 그리고….

여러 해 전에 일본 지하철에서 옴진리교의 광신도들이 사린가스를 뿌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때 죽은 사람 중에는 피할 길을 잘 아는 역무원들도 있었다. 그러나 역무원들은 비상시에 대비하는 매뉴얼대로 자기 위치를 찾아 그 자리에서 매뉴얼대로 업무를 수행하다가 퍼지는 독가스에 목숨을 잃었다. 매뉴얼대로 하다가 희생된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그 역무원들을 ‘바보들’이라고 할지 모르나 국가사회의 시스템이 유지되려면 목숨 걸고 자기 직분을 다하는 이런 사람들이 떠받쳐 주어야 한다. 그런데 5층 건물을 철거하는데 안전장치를 제대로 하지 않고, 그것을 감독도 제대로 아니하고, 그러다가 아까운 생명이 스러지다니.

아마 모르긴 해도 건물 철거시의 매뉴얼이 있긴 있었을 것이다. 철거 쪽에서 매뉴얼을 등한히 해서 생긴 사고일 것이다. 왜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매뉴얼대로 잘 하지를 않을까. 매뉴얼을 죽기까지 하면서 지키는 다른 나라 역무원급은 아닐지라도 큰 돈 드는 것도 아니요, 조금만 유의했으면 불행한 사고를 미연에 막을 수 있었을 일을 왜 우리는 못하는가.

우리에게 확실히 실행하는 매뉴얼이 있긴 있다. 내게 각인된 매뉴얼 아닌 매뉴얼이란 것은 이런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 무슨 사고만 일어나면 이런 말이 당국자든, 회사든, 누구든 으레 내뱉는 말이다.

우리는 이런 말을 수백 번, 수천 번 들었다. 그리고 안전사고는 그 말을 비웃듯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지키지 않는 매뉴얼이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났을 때 도로가 끊어지는 바람에 고립된 마을 사람들, 학교 건물로 대피한 이재민들에게 시급히 전해야 할 구호물품들이 배급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생필품들이 차고 넘치게 당국에 쌓여 있었는데도 그랬다.

이유는 단순했다. 도로가 끊겨서 육로로 전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헬리콥터로 전해주면 되었을 것 아니냐고? 불행하게도 그 당시 매뉴얼에는 구호물품을 육로로 전해주는 매뉴얼은 잘 되어 있었으나 헬리콥터로 전해준다는 매뉴얼은 없었다. 그래서 헬리콥터로 전하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이없게도 ‘매뉴얼대로 해야 해서’ 전달하지 못한 경우가 발생한 것이라 한다.

얼른 믿지 못할 이 이야기는 매뉴얼 천국 일본에서 일어난 소극이다. 이럴 때는 매뉴얼이란 게 없는 것만 못해 보이는데, 길게 보면 어쨌든 매뉴얼대로 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안전하다.

매뉴얼 이야기는 곧 헌법으로 확대 해석해도 어색하지 않다. 우리의 자랑스런 헌법은 우리의 국가사회를 지키는 든든한 매뉴얼이다. 그 매뉴얼로 국민을 지키고 보호하고, 나라를 유지한다. 툭, 하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말이 시끌사끌하지만 정작 헌법이라는 매뉴얼을 어김없이 지키자는 데는 ‘내 생각 네 생각’이 서로 다른 것 같다.

국가존립의 매뉴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제대로 지켜져야 한다. 국가의 첫째가는 매뉴얼은 안보다. 요즘 구멍이 숭숭 뚫린 것 같아 불안하다. 퍼뜩 영문도 모르고 죽는 파리 목숨이 생각난다. 매뉴얼이 잘 지켜지는 사회와 국가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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