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 온 참새
도시로 온 참새
  • 문틈 시인
  • 승인 2019.07.1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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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는 대대로 농촌에 터를 잡고 살아온 시골 텃새로만 생각해왔는데 이제는 도시의 새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수많은 차량들이 내달리는 도로변의 인도에서 참새들과 마주치는 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비둘기들이 인도에서 행인들의 발걸음을 종종거리며 피하면서 모이를 찾아다니는 모습 사이로 참새도 몇 마리씩 인도에 내려와 딱딱한 보도블럭 위에서 뭔가를 쪼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포르르 가로수로 떼 지어 날아오른다.

거의 비둘기만큼이나 사람들의 발길을 겁내지 않는 것 같다. 번잡한 인도에 내려와 모이를 찾는 참새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짠한 생각이 들곤 한다.

어쩌다 먹을거리가 풍부한 시골 농촌을 떠나와 이 복작대는 도시에 살고 있는지 잘 이해가 안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도시로 도시로 몰려드니까 사람들을 따라 참새도 도시로 따라온 것일까.

하기는 나도 참새처럼 어릴 때는 시골 농촌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도시로 몰려가는 사람들의 거대한 흐름에 떠밀려 청운의 꿈을 품고 도시로 갔다. 도시의 삭막함 속에 발붙이고 살기 위해 대학, 직장, 결혼, 주택마련 같은 남들이 가는 행로를 따라 황금 같은 인생의 한 대목을 바쳤다.

내 고향 동무들도 이제는 거의 시골에 남아 있지 않다. 참새들도 도시에 살기 위하여 먹이, 둥지, 가족 문제로 무진 애를 썼을 것이다. 한데 대체 참새들은 이 도시 어디에다 집을 짓고 사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얼른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참새들은 오늘도 도시에서 야윈 몸으로 날개짓을 하며 포릉 포릉 날아다닌다. 참새들도 나처럼 가정을 이루어 힘들게 살고 있는 것 같다.

농촌에서는 곡식이 익어가는 논밭에 참새 떼가 몰려들어 이삭을 까먹을라치면 ‘후여, 후여’ 소리를 지르며 양동이를 두드리거나, 논밭에 빈 깡통들을 댓가지에 매달아 소리를 내거나 허수아비를 세워놓는다.

그래도 극성을 부리면 댕기머리 모양의 뙈기를 공중에 몇 바퀴 세차게 돌려 허공에 따앙, 하고 후려치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어 참새 떼를 쫓았다. 그 소리에 논에서 일제히 공중으로 날아오르던 참새 떼의 모습이 안잊힌다.

곡식이 익어갈 무렵엔 농삿일하는 사람들의 일은 참새와의 전쟁이 큰 문제다. 마당에 널어놓은 곡식이나 헛간에 쟁여놓은 곡식 가마니에 참새 떼가 우르르 몰려와 곡식을 쪼다가 사람 발걸음 소리에 재빨리 도망가곤 하던 모습. 그런 참새들이 이 삭막한 도시 어디에 먹을 것이 있다고 떼 지어 날아다니며 도시 사람들과 함께 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도시에는 아무리 휘둘러보아도 수수 한 포기 자랄 밭 한 뙈기 없고, 벼 한 포기 심을 논 한 마지기 없다. 참새가 살아가기엔 사막 같은 영 안좋은 환경이다. 그런데도 참새들은 도시에서 사람들과 함께 산다. 참새들은 사람들 가까이서 살아야 할 무슨 이유가 있는가싶다.

인도에는 참새가 먹을 것이라곤 서숙 알 하나 떨어진 것이 없다. 혹시 바람에 날아온 풀씨들을 찾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먹다가 흘린 새우깡이나 빵부스러기 같은 것을 쪼아 먹는 것일까.

도시에 사는 참새들은 도시 여자들처럼 날씬하다. 시골에서 보던 제법 통통한 모습의 참새가 아니라 끼니를 걸러가며 열심히 피트니스센터에서 다이어트를 한 여자들처럼 홀쪽한 모습이다.

아마도 도시에는 농촌보다 먹을 것이 모자라서 못먹다 보니 날씬한 모양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대로 오래 가면 참새들도 비둘기처럼 사람이 다가가도 멀리 날아나지 않고 사람들 가까이에서 날개짓을 하며 사람들의 선의에 의지하는 새로 살지도 모른다. 마치 제2의 비둘기처럼.

참새는 옛날엔 시골 초가지붕의 지시락 사이의 틈을 집으로 삼고 그곳에 알을 낳고 대를 이어 살았다. 그랬던 참새들이 도시의 시멘트 벽으로 세워진 빌딩들 그늘에 날아들어 미세먼지와 오존과 자동차의 배기가스, 그리고 소음의 틈새에서 짹, 짹, 거리며 산다.

마치 내가 먼지와 소음, 도시의 삭막함 속에서 기를 쓰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처럼. 도시 참새들의 사는 모습이 어쩌면 흡사 나의 처지를 빼닮은 듯하다.

왜, 참새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척박한 도시에서 새끼를 먹이며 도시 사람들의 발걸음 사이에서 힘들게 사는 것일까. 그 질문은 거꾸로 내 스스로에게 해야 할 물음 같기만 하다. 하나 나는 그 대답을 말 못한다.

아무도 도시 참새들을 홀대해선 안된다. 참새들은 내게 생명의 연대를 구하는 대자연의 전령 같기만 하다. 모름지기 내가 도시로 흘러와 귀밑머리 희끗하도록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듯 참새도 나처럼이나 이제는 차마 시골로 못돌아가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도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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