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1) 대랑군(待郞君)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1) 대랑군(待郞君)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7.1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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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높아 달이 더디 뜬 것인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자는 약속은 생산성이 없다. 생산성이 없는 약속이지만 가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약속이 독수공방을 지키면서 바람만 불어도 임이 아니신가 기다리던 약속이었다면 더 말할 나위 없으려니. 여인의 기다림은 오직 은근과 끈기로 가슴 조이는 애태움에 있다 한다. 달이 뜨면 오마시던 임이 오시지 않아 기다리다가 아마도 그곳엔 산이 높아 달이 더디 뜬 것이라고 합리화 해버리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待郞君(대랑군) / 능운

그대는 달이 뜨면 오마고 약속하고

달이 떠도 낭군은 오시지 않으시네.

산 높아 달이 떴나요, 그대 계신 그곳에

郎云月出來      月出郎不來

낭운월출래      월출낭불래

想應君在處      山高月上遲

상응군재처      산고월상지

 

산이 높아 저렇게 달이 더디 뜬 것이겠지요(待郞君)로 번역해 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능운(凌雲:?~?)으로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낭군이 말하기를 달이 뜨면 오마고 약속하셨는데 / 저리도 달이 떠도 낭군은 오시지 않는군요 / 내가 생각건대 응당 낭군님이 계신 그곳에서는 / 산이 높아 저렇게 달이 더디 뜬 것이겠지요]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낭군을 기다리며]로 번역된다. 다음 의역도 가능하다. 맛깔 나는 시의 운치를 맛본다. [임 가실 제 달 뜨면 오마시더니 / 달은 떠도 그 임은 왜 안 오실까 / 생각해 보니 아마도 임 계신 그곳엔 // 산이 높아 뜨는 달이 늦은가 보지] 운치가 더한 느낌이 든다.

흔히 능운지지(凌雲之志)라는 말을 쓴다. 세속을 초탈한 의지는 높은 구름을 훨씬 넘는다는 뜻으로 속세에 초연한 태도나 초탈하려는 마음과 연결 시켜보려는 것이겠다.

시인은 낭군과 깊은 약속을 했던 모양이다. 달이 뜨면 오겠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달이 떠도 오시지 않는 낭군을 기다리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낭군이 계신 곳이 아마도 산이 높아 달이 더니 뜬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시인의 긍정적인 판단을 해보는 상상력을 만난다.

화자는 그 약속을 믿고 자기합리화를 해버린다. 재회의 기약은 순조롭게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다. 더구나 달뜨면 오겠다는 약속은 허망하기만 하다. 달이 떠올랐건만 임은 오지 않고, 기다리는 심정은 안타깝기만 하다. 이 안타까움을 ‘임 계신 곳의 산 높아 뜨는 달이 늦다’라고 달랜다. 임 그리는 마음이 이리도 한량없는 것이리라.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달이 뜨면 오마던 임 달이 떠도 오지 않네, 낭군님 계신 곳에 산이 높아 달이 더딘지’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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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능운(凌雲:?~?)으로 기녀 출신 여류시인이다. 생몰연대를 비롯해서 그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한자와 어구】

郎云: 낭군이 말하다. 月出: 달이 뜨다. 來: 오다. 그 임이 곧 오시겠다. 郎: 낭군. 不來: 오시지 않는다. // 想: 생각건대(혹은 ‘霜(서리 상)으로 보아 서리가 내리는데’. 應: 응당. 君在處: 그대 있는 곳. 그대 있는 곳으로부터. 山高: 산이 높아서. 月上: 달이 뜨다. 遲: 더디게 뜨다. 느리게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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