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벌
춤추는 벌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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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선의 산골마을 이야기. 5. >

인문사회과학서점인 청년글방 대표였던 문충선님은 2000년 봄, 고향인 장흥으로 귀농하였습니다. 장흥의 깊은 산골인 한치마을에 살고 있는 문충선님의 사는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 편집자주.

배추흰나비가 춤춥니다. 아내와 아들과 산책 간 문 닫은 학교, 키 큰 버드나무 수많은 잎새들이 반짝반짝 손바닥 춤을 춥니다. 우리집 강아지 '보고'도 살랑살랑 꼬리춤을 춥니다.(보고가 말썽을 부려 사나흘 마당가 감나무에 매달아 놓았더니 먹은 것을 토하고 갑갑한 듯 낑낑거리며 어쩔 줄을 모릅니다. 밤이면 풀어 주는데 글쎄 헛간 뒷쪽으로 가서 서러웠는지 우웅우웅 늑대소리로 우는 것입니다. 한 참을 부르니 그때서야 어둠 속에서 흰 모습을 드러내며 천천히 걸어옵니다. 남 몰래 울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런데 이즈음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커다란 기쁨을 주는 춤꾼은 뭐니뭐니해도 '벌'입니다. 집에서 치는 꿀벌 말입니다. 집집마다 한봉을 치는데, 이 시기에 한참 새끼를 쳐 여왕벌이 분가를 합니다. 요것들이 분봉을 시작하면 수천 수만의 떼거리로 공중에서 집단원무를 추는 것입니다. 마당 위 온 공중이 춤추는 '벌천지'가 되는 거지요. 조금은 긴장하며 즐겁게 그들의 춤을 지켜보아야 합니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강강수월래는 아니고 자진모리로 휘돌아가는 정신없는 신명난 춤이라고나 할까요.

©마동욱 사진작가

일 이십분 신명난 춤판을 벌인 벌떼는 가까운 나뭇가지에 한 덩어리로 모여 장군봉의 다음 명령(?)을 기다립니다. 새 집을 찾아 나서려는 작전회의인 셈입니다. 한 시간 정도의 이 웅웅거리는 침묵의 시간 안에 이들을 벌통으로 쓸어 담아와야 합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멀리 산 속으로 날아가 버리지요. 먼저 한 사람이 짚으로 엮은 고깔을 긴 대나무에 매달아 벌떼가 착지한 나뭇가지 위에 바짝 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또 한 사람이 부드러운 쑥을 묶은 대나무로 벌떼의 궁둥이 쪽을 슬슬 문질러 고깔 속으로 밀어넣는 것입니다. 말은 쉽지만 경험에서 우러난 고난도 기술을 필요로 하지요.

한치 마을에 30~40 가구가 살던 예전에는 밀원이 풍부하여 집집마다 수 십 통씩 벌을 쳤다고 합니다. 산기슭의 손바닥만한 땅도 부쳐먹을 때였으니 여러 작물의 꽃(특히 봄에는 유채꽃, 가을에는 메밀꽃)이 풍성했고 산에 꽃피는 나무도 다종다양해서 밀원이 넘쳐났던 것입니다. 더구나 그 때는 농약이나 제초제를 뿌리지 않았으니 들판이고 산이고 벌들의 활동이 거침없는, 자유의 공간이 형성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올해는 집집마다 벌통을 새로 들여오기도 하고 분봉을 많이 해 벌을 많이 치니 산골마을 한치의 옛 영화를 다시 찾기 위한 마을 사람들의 변화를 기대해 봅니다.

재밌고도 웃긴 광경 - 하나
한봉을 치는 것이 작물로 치면 꿀벌을 재배하는 것이니 여러가지로 신경을 써야합니다. 거의 날마다 벌통 바닥을 청소해야 합니다. 쑥을 말렸다 불을 피워 연기를 내면 벌들의 활동이 둔화되어 쉽게 벌통 안을 들여다보며 벌레도 잡아주고 청소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귀찮아 쑥불을 피우지 않고 벌통을 청소하다 그만 벌에 쏘이고 말았습니다. 방심한 거지요.

하필이면 윗입술을 쏘였는데 금방 부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일부러 거울을 보지는 않았지만 말이 새고 뭔가 두툼한 게 많이 부은 느낌이었습니다. 마침 학교를 다녀온 하늘이가 나를 보더니 깔깔거리며 웃기부터 시작합니다. 펄리칸이라나 붕어입이라나 놀려대는 것입니다. 조심스럽게 거울을 보니 이게 영 맛이 간 얼굴입니다. 그 다음 날까지 마스크를 쓰고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동욱 사진작가

재밌고도 웃긴 광경 - 둘
우리 집에 와본 사람은 알겠지만 쭈그리고 앉아 쉬원하게 볼일을 보게 되어있는 뒷간에 바깥을 볼 수 있게끔 눈꼽째기 창이 있습니다.(뭐 운치 있는 창이라기보다는 그냥 손바닥 크기 만하게 구멍을 내놓은 것이지요) 그런데 누가(그 사람의 신원은 비밀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볼일을 보다 그 창으로 발견한 것입니다. 그이는 말만 들었지 수많은 벌들이 떼로 그것도 한 덩어리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처음 본 모양입니다.

갑자기 뒷간에서 호기심에 찬 놀라운 비명소리가 들려 가보니 텃밭가 감나무 가지에 시커먼 다슬기떼(볼일 보던 누구의 표현입니다)가 한 웅큼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고개 쳐들고 하늘 보는 벌을 받으며 한 시간 여만에 요 이쁜 것들의 새 집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춤추는 벌로 해서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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