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아침에…
스승의 날 아침에…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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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아닌 5월의 잦은 비가 도시를 적시는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7번째 맞이하는 '스승의 날'이건만 아직도 어색하고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교실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스승의 은혜'를 불러 줄 것입니다. 음료수 하나부터 부모님이 들려 보내신 부담스러운 선물까지 내보이며 아이들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노래도 불러주고 춤도 춰줄 것입니다.

오늘만은 지각생도 없고, 엎드려 잠자는 아이도 없을 것입니다. 참 교사로서 행복한 날입니다. 학생들이 무례해지고 교단이 무너졌다고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깨끗한 눈빛과 포장되지 않은 행동으로 저를 눈물나게 하곤 합니다.

3년 전, 어떤 학부모님이 생각납니다. 딸과 단둘이 살면서 구청에서 청소일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어머니였습니다. 그분이 수박 2통을 들고 교무실을 찾아오셨습니다. 열정(?)을 감당하지 못하는 몇몇 학부모들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푸짐한 먹을거리를 들고 올라오는 오르막 비탈길을 낡은 스쿠터를 끌고 작업복 차림으로 그렇게 달려오셨습니다. 더불어 담임 교사인 내 손을 잡으며 딸아이를 부족하게 키워 부족한 점만 있다며 내내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시던 그 선량한 얼굴.

60여명의 선생님들이 나눠 먹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박이었지만, 그처럼 맛나고 배부르게 먹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딸아이가 부끄러워한다며 서둘러 내려가시는 그 분을 배웅하고 돌아서는 순간, 제 눈과 가슴에는 이미 촉촉한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소박하고 선량한 사람들 앞에서 나도 정 많고 순박한 선생님이어야 한다고 다짐해 보았습니다.

마음이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예쁘게 포장된 음료수 하나,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며 부끄럽게 내민 작은 엽서 한 장에서 오히려 숫자로는 계량할 수 없는 커다란 보람과 행복을 얻습니다. 인정이 없는 물질은 오히려 사람을 황량하고 초라하게 만듭니다. 인정은 물질을 거치지 않고 마음으로 눈빛으로 전해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기에 행복한 사람들은 오늘도 사람 냄새나는 인정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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