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0) 유초의선(留草衣禪)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0) 유초의선(留草衣禪)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7.0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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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부는 어느 곳인들 산집이 아니랴

조주차란 조주 선사가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즐겨 마셨던 차(茶)다. 그를 찾아오는 참선하는 남자들에게 차를 권했으며, 어느 수좌와 선문답에서 불법의 정수를 물었을 때에도 선뜻 “차를 마시고 가라(喫茶去)”고 응대했단다. 이는 화두공안의 하나로 전해지는데, 이로부터 차를 마심이 단순히 물질적 차 마심을 넘어 마음을 깨우치기 위한 참선수행과도 깊이 관련되어 전승된다. 완당이 초의를 머무르게 했었는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이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留草衣禪(유초의선) / 완당 김정희

눈앞의 잔에 담아 조주차 마셨더니

부처님 꽃뜻 알고 굳세게 지켰구나

봄바람 어느 곳인들 산에 집이 아니라.

眼前白喫趙州茶      手裏牢拈梵志華

안전백끽조주차      수리뢰념범지화

喝後耳門飮箇漸      春風何處不山家

갈후이문음개점      춘풍하처부산가

 

봄바람 부는 어느 곳인들 산집이 아니랴(留草衣禪)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1786~1856)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눈앞 보이는 잔으로 조주의 차 한 잔 마시고 / 손안의 부처님 꽃 뜻을 알고 굳게 지키려 하네 // 외진 곳 뒤에 있는 귓문에서 물을 따르고 있는데 / 봄바람 부는 어느 곳인들 산집이 아니랴]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초의선사가 머물다 감]으로 번역된다. 추사와 헤어지면서 초의가 지은 오언대구(五言對句)에는 [가는 연기 옅은 안개 / 나무 끝에 번져나고 / 흩어지는 먹물 번짐 / 그윽하고 해 맑구나]에서 <다선일미(茶禪一味)>의 사상이 담긴 표현을 알게 한다. 그 만큼 다향의 그윽함은 진한 진미를 주었던 것 같다.

초의선사의 독백을 통해 불이(不二)의 깨달음에 닿고 세상의 모든 변을 여읜 자리 중도에 닿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한 시인은 눈앞 보이는 잔으로 조주의 차 한 잔 마시고, 손안의 부처님 꽃 뜻을 알고 굳게 지키려 한다고 했다. 손안의 부처님 꽃의 뜻을 알고 굳게 지키는 가운데 봄바람이 스침을 안다.

화자는 귓문에서 물을 따르는 소리에 취하고 마는 시상을 알게 한다. 외진 곳 뒤에 있는 귓문에서 물을 따르고 있는데, 봄바람 부는 어느 곳인들 산집이 아니냐고 하면서 봄바람과 산집을 동격으로 생각한다. 조용한 곳에서 찰찰 거리는 찻물을 따랐던 모양이다. 어느 곳인들 산집이 아니냐고 물어 보면서 두 사람에게 “차를 마시고 가라(喫茶去)”고 말하면서 권하면서 머물게 했을 것이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조주차 한 잔 마시고 부처님 뜻 굳게 지키리, 귓문에서 물 따른데 어느 곳인들 산집아니랴’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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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68~1856)로 조선 후기의 문신, 실학자, 서화가이다. 10년 전 윤상도의 옥에 연루되어 1840년부터 1848년까지 9년간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풀려났다. 다시 1851년 권돈인의 일에 연루되어 함경도로 유배되었다가 2년 만에 풀려났다.

【한자와 어구】

眼前白: 눈앞의 잔. [白]은 흰 잔을 뜻하겠음. 喫: 마시다. 趙州茶: 조주의 차. 차 이름. 手裏: 손 안. 牢拈: 굳게 지키다. 梵志華: 부처님 꽃. // 喝後: 외친 뒤. 소리친 뒤에. 耳門: 귀문. 飮箇漸: 물을 따르다. 春風: 봄바람. 何處: 어느 곳. [何]는 의문격 부사. 不山家: 산 집이 아니다. 곧 산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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