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강의 잔물결, 그리고 사의 찬미
다뉴브강의 잔물결, 그리고 사의 찬미
  • 김오순 시인/논설위원
  • 승인 2019.06.1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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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순 시인
김오순 시인

[다뉴브강의 잔물결]이라는 왈츠곡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라는 곡으로 편곡되어 슬프고 우울하고 염세적인 곡으로 익숙해진 곡이지만, 원곡은 루마니아왕국 초대 군악대 총감독을 지낸 이바노비치가 1880년 군악대를 위한 곡으로 작곡 된 경쾌한 4분의 3박자 왈츠곡이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가로지르는 다뉴브강은 독일 바덴에서 발원해 루마니아 동쪽 해안을 거쳐 흑해로 들어가는 길이 2860km로 유럽에서 볼가강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강이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으로도 알려진 다뉴브강은 영어로는 다뉴브(Danube)로 불리지만, 독일에서는 도나우, 헝가리에서는 두나, 체코에서는 두나이, 루마니아에서는 두너레아, 불가리아에서는 두나브 등으로 모두 ‘흐름’ 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다뉴브강의 야경은 프랑스 파리, 체코의 프라하와 더불어 유럽 3대 야경으로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유명한 단골 코스이다. 그러나 그 잔물결이 폭우를 만나고 야경에 취하더니 성난 물결이 되어 설레던 여행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인어(허블레아니)를 삼켜버렸다.

폭우가 쏟아지던 다뉴브강에서 야경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던 유람선 허블레아니호 후미를 스위스 국적 5배나 큰 대형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Viking Sigyn)이 추돌하여 7초 만에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침몰한 허블레아니호 유람선에는 우리나라 관광객 30명, 여행사 직원 1명, 가이드 1명, 사진작가 1명 등 33명과 헝가리인 선장 1명과 직원 1명 등 총 35명이 타고 있었으나 7명만 구조되고 나머지는 모두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으로 밝혀져 두 나라 국민들을 안타까움에 빠지게 했다. 보통의 날은 승객들이 2층 갑판으로 나와 야경을 즐기지만 사고 당시엔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 1층 실내에 들어가 있어 피해가 컸다고 헝가리 방송사들은 전했으며 계속적인 시신 수습과 사고 선박 인양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사고선박의 이름인 ‘허블레아니’는 인어(mermaid)라는 뜻으로 유럽에서는 폭풍의 징조를 뜻하고, 추돌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진 스위스 국적 선박의 이름인 ‘바이킹 시긴(Sigyn)’의 뜻은 호우(豪雨) 뒤에 물이 넘치는 ‘도랑’이라는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하여 애써 결부시키려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마음이 무겁다.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가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이바노비치의 '다뉴브강의 잔물결'에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성악가 윤심덕이 가사를 붙이고 동생 윤성덕이 피아노 반주를 하여 녹음한 노래 ‘사의 찬미’ 가사의 일부이다. 윤심덕은 이 노래를 녹음하고 이틀 후 애인 김우진과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그녀는 평양의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으나 교육열이 높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경성여고보 사범과를 졸업하고 강원도 원주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조선총독부 관비생으로 일본 동경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한 전도유망한 수재였고, 김우진은 전남 장성에서 장성군수 초정 김성규의 장남으로 태어나 목포에서 성장하였으며 일찍 결혼하여 처자를 둔 몸으로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그는 연극인이자 목포 최초 근대예술인으로 윤심덕과 현해탄에 투신하여 생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 극작가이며 시대를 앞서간 목포의 거장으로 목포에는 김우진을 기리기 위한 김우진 거리와 김우진 문학관이 있다.

신여성으로 살고 싶은 자신의 욕구와 전통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 사이에서 갈등을 했던 윤심덕, 그리고 전통인습의 현실부정을 바탕으로 개혁사상을 강렬하게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였던 김우진, 이 두 사람은 서로의 예술적 동조자이자 연인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했고 ‘사의 찬미’라는 노래를 유언처럼 남기고 현해탄에 투신하여 삶을 마감했다. 그리고 근 100여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우리는 ‘사의 찬미’의 애절함으로 ‘다뉴브강의 잔물결’을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 더 이상 윤슬로 반짝이던 다뉴브강의 잔물결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도 없을 것이다. 슬픔이 가라앉지 않은 다뉴브강은 부서진 오월의 장미처럼 오래도록 우리의 기억 저편에 아픔으로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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