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28) 자규제(子規啼)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28) 자규제(子規啼)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6.1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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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이 원래 병인 것을 진즉에 깨달았지만

‘청구영언’에 고려말 매운당 이조년(李兆年:1269~1343)의 시조 한 수가 전한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은 삼경인 제/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라는 시조다. 텍스트의 시는 위 매운당의 시조가 시적배경이 되고 있다. 전해오는 우리의 전통 시조를 한역화했던 소악부를 저술했던 대시인이었기에 이런 번안(飜案)이 가능했겠다. 두견새 우는 소리가 사람의 잘못으로 빚어진 것이 아니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재 번안해 본다.

 

子規啼(자규제) / 자하 신위

배꽃에 달은 밝고 하늘은 오경인데

토하며 우는 소리 원망하는 두견새

다정이 원래 병인 것을 잠 못 이뤄 하누나.

梨花月白五更天      啼血聲聲怨杜鵑

이화월백오경천      제혈성성원두견

儘覺多情原是病      不關人事不成眠

진각다정원시병      불관인사불성면

 

다정이 원래 병인 것을 진즉에 깨달았었지만(子規啼)으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5)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활짝 핀 배꽃에 달은 밝고 하늘은 오경인데 / 피를 토하며 우는 저 소리 원망하는 두견새 울음 소리 // 다정이 원래 병인 것을 진즉에 깨달았었지만 / 사람들 일과 관계없는데도 잠 못 이루겠구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두견새의 울음소리]로 번역된다. 이조년의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은 삼경인데]로 시작되는 다정가를 한시로 번안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자하는 당시 국내외의 저명한 예술가, 학자들과 폭넓은 교유를 했다. 1812년 중국에 가서 옹방강(翁方綱)을 비롯한 그곳의 학자들을 만나고 돌아온 이후 그 전에 쓴 자신의 시들을 다 태워버렸다.

칠언절구의 형식으로 논평한 [동인논시절구(東人論詩絶句)], 시조를 한역한 [소악부(小樂府)], 판소리 연행을 한시화한 [관극절구(觀劇絶句)]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한 시인이 배꽃이 필 무렵 달구경을 하고 있다. 멀리서 피 토하는 소리로 우는 두견새의 원망 소리에 차마 잠을 못 이룬다. 두견이 우는 소리와 관계는 없는 일이지만 잠 못 드는 시인이다.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선현의 시조 한 수가 시적 배경이 되었음을 알게 한다.

화자의 잠 못 드는 애탄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배꽃이 달빛을 받아 환하게 비추면 마음이 서성였던 것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거기에 두견새까지 방해부리는 듯이 화자의 마음을 서성이게 했으니 그 심정이야 오죽했겠는가.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배꽃 밝아 달은 오경 피토하는 두견새 울음, 다정도 병인 줄 알아 차마 잠못 이루겠네’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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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5)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1812년(순조 12) 진주 겸 주청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가서 안목을 넓힐 기회로 삼아 중국의 학자·문인과 교유를 돈독히 하였다. 대학자 옹방강과의 교유는 그의 문학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자와 어구】

梨花月白: 매꽃에 달은 밝다. 五更天: 하늘은 오경이다. 啼血聲: 피토하며 우는 소리. 聲怨杜鵑: 원망하는 두견새 소리. // 儘覺: 진작 깨닫다. 多情: 다정. 정이 많다. 原是病: 원래 병이다. 不關: 관계가 없다. 관계하지 않는다. 人事: 사람의 일. 不成眠: 잠을 이룰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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