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26) 송별(送別)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26) 송별(送別)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5.29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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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등잔불과 함께 이내 몸 꺼져버릴지언정

여심을 여과없이 노정하고 있는 시를 자주 만난다. 떠나려는 임을 결코 보내지 않으려는 애틋한 마음도 시를 읽는 사람의 눈을 그냥 넘기지 못하게 한다. 든든하게 먹여 보내려는 여심도 만나고 추위에 떨지 말라고 옷 한 벌을 마름질하는 애틋한 여심도 그냥 스치어 넘길 수 없다. 아마 입혀 보낼 적삼에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런 마음들을 담아 내일 아침 먼 길 떠나려는 뒷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送別(송별) / 난향

그대 입을 적삼에 내 눈물 떨어져서

가위질에 짧고 길게 돌려서 빙빙 돌고

등잔불 몸 꺼질망정 말 탄 모습 못 보겠네.

持子征衫下淚裁      金刀隨手短長回

지자정삼하루재      금도수수단장회

此身寧與殘燈滅      不見明朝上馬催

차신영여잔등멸      불견명조상마최

 

희미한 등잔불과 함께 이내 몸도 꺼져버릴지언정(送別)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난향(蘭香:?~?)으로 여류시인이다.

위 시 원문을 번역하면 [그대가 입으실 적삼에 마름질하는데 내 눈물이 떨어져 / 가위질을 따라서 짧고도 길게 빙빙 돈다오 // 희미한 저 등잔불과 함께 이내 몸도 꺼져버릴지언정 / 내일 아침 말 타는 모습일랑 차마 못 보리]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임을 보내면서]로 번역된다. 어느 사대부가 대역죄를 저질렀다. 그 자손들은 모두 관노가 되거나 관비가 되는 신세가 되었다. 가솔(家率)들 뿐만 아니라 그 밖의 천출(賤出)들이나 여식들도 모두가 관노가 되거나 관기가 되는 혹독한 죄목이다. 이런 사대부 벼슬아치가 관기 난향과 함께 아름다웠던 시절을 상상하며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가슴 속에 남겨두고 떠나려는 저녁이다.

시인은 떠나는 임의 적삼을 마름질하고 있다. 바느질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눈물이 앞선다. 떨어진 눈물이 적삼을 적시는가 했더니만 가위질하는 손길을 따라 어느 때는 길게 어느 때는 짧은 모습으로 따라다닌다.

서러움에 겨운 시인의 마음을 담는다. 차라리 등잔불과 함께 이내몸 꺼지고 말지언정 내일 아침 떠나는 모습은 차마 볼 수가 없다고 우짖고 있다.

화자의 기막힌 몸부림을 만난다. 얼마나 이별을 아쉬워하는 절규가 간절했었다면 가물거리는 등잔불과 함께 자기도 꺼지고 싶다고 했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는 볼 수 있는 길을 가기 위해 말을 타고 떠나는 그 모습은 차마 볼 수 없다는 몸부림을 느낀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그대 적삼 내 눈물이 가위질이 빙빙 도네, 등잔불처럼 내 몸도 꺼질지니 말 탄 모습 차마 못 봐’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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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난향(蘭香:?~?)으로 여류시인이다. 생몰연대와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한자와 어구】

持子: 그대가 입다. 征衫: 적삼(멀리 떠날 때 입은 옷). 下淚裁: 마름질한 눈물이 떨어지다. 金刀: 가위질. 隨手: 손을 따라서. 短長回: 짧고 길게 빙빙 돈다. // 此身: 이 몸. 寧: 차라리. 與殘燈滅: 등잔불과 같이 꺼지다. 不見: 보지 못하겠다. 明朝: 밝은 날 아침. 上馬催: 말 위에서 재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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