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24) 고열행(苦熱行)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24) 고열행(苦熱行)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5.15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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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다리로 층층 얼음 밟고 싶은 생각 뿐

우리나라는 사계절의 차이가 뚜렷하다. 봄과 가을은 그지없이 시원하여 활동하기에 편하지만 여름과 겨울은 그와는 정반대다. 여름엔 심한 더워가 사람의 게으름을 더해주고, 겨울엔 꽁꽁 언 추위가 맹위를 자랑하듯이 사람 활동을 제약한다. 시적인 배경은 한 숨이 헉헉 막힐 듯이 찌는 듯한 어느 여름날 더위였던 모양이다. 멍석과 같은 자리를 깔고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하며 더위와 싸우면서도 켜켜이 얼어 있는 얼음을 생각하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苦熱行(고열행) / 아정 이덕무

자리 깔고 앉았다가 때로는 안석 기대

맨 다리 층층 얼음 밟고 싶은 생각뿐

집안에 파리모기 끓어 근심만이 가득하네.

或坐緗簟時几凭      赤脚惟思踏層氷

혹좌상점시궤빙      적각유사답층빙

況復堂宇鬧蚊蠅      中心鬱鬱愁如繩

황복당우료문승      중심울울수여승

 

맨 다리로 층층 얼음 밟고 싶은 생각 뿐(苦熱行)으로 제목을 붙여보는 칠언절구다. 작자는 아정(雅亭) 이덕무(李德懋:1741~1793)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자리 깔고 앉았다가 때로는 편안한 안석에 기대니 / 맨 다리로 층층 얼음을 밟고 싶은 생각뿐 // 하물며 집안에서는 파리 모기 억세게 들끓어 / 가슴 속이 답답하여 근심만 가득하구나]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푹푹 찌는 이 더위에]로 번역된다. 실학자의 한 사람도 실질적인 더위를 참아내기엔 매우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더위를 식히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이런 시문을 썼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든다. 숨이 헉헉 막히는 여름을 경험한 보통 사람의 느낌 또한 그러했을 것이니…

더위를 참지 못한 시인의 몸부림이 눈에 선히 보인다. 자리를 깔고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하는 모습에서 당시의 상황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눕는 것도 지겨웠던지 안석에 기다란 몸을 기대어 보는 상황까지도 아낌없이 연출한다. 이렇게 더울 때는 추운 겨울이 생각난다. 양발을 벗은 맨 다리로 층층이 겹친 얼음을 밟고 싶은 강한 충동이 생긴다.

그러면서 화자의 눈에 보이는 것은 파리와 모기떼의 극성스러운 모습니다. 얼굴을 핥는가 했더니만 살갗이라고 생긴 곳은 성한 곳 없이 물어 뜯는다. 그래서 화자는 가슴 속이 답답하여 근심만이 가득하다고 했다. 얼마나 파리 모기떼가 극성을 부렸으면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위가 못살게 굴더니만 극성스런 파리와 모기가 극성을 부린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앉았다가 안석에 기대 층층 얼음 밟고픈 생각, 파리 모기 들끓어서 가슴 답답 근심 가득’이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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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아정(雅亭) 이덕무(李德懋:1741~1793)로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다. 약관에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와 함께 <건연집>이라는 사가시집을 내기도 하였다.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유득공, 서이수 등의 북학파 실학자들과 깊이 교유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한자와 어구】

或: 혹은, 坐緗簟時: 자리 깔고 앉다. 几凭: 안석을 기대다. 赤脚: 발벗은 다리, 惟: 오직, 思踏: 밟으려고 생각하다. 層氷: 층층이 언 얼음 // 況復: 하물며 다시, 堂宇: 집안에, 鬧蚊蠅: 파리 모기 들끓다, 中心: 가슴 속, 鬱鬱: 답답하여, 愁如繩: 근심이 노끈처럼 얽혔다. 근심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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