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철과 유시민의 진술서 공방은 견강부회(牽强附會)
심재철과 유시민의 진술서 공방은 견강부회(牽强附會)
  • 김범태 정치학박사, 한국투명성기구광주전남본부 상임대표
  • 승인 2019.05.13 0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범태 정치학박사

요즘 심재철 자한당 국회의원과 유시민 노무현 재단이사장이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두 사람의 행동으로 인한 사건으로 검찰의 조사과정에서 자신들이 행한 진술서 내용과 관련 진실공방이 매우 뜨겁다.

거기에 더하여 당시를 살았던 서울대학교 내에서 민주화운동을 하였던 선후배들이 두 사람을 두고 이러저러한 얘기들을 하는 모습 또한 점입가경이다. 두 사람에 대한 선후배들 간의 평가는 비교적 유시민 이사장한테 유리한 증언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두 사람의 진실공방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1980년 당시 심 의원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이고 유 이사장은 대의원회 의장으로서 학생 지도부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두 사람 모두이념서클인 ‘농촌법학회’ 회원으로 활동했던 탓이기도 하지만 1980년 이후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을 비롯한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은 전두환 등 신군부의 정권탈취 계획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진솔하게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이었을 뿐만 아니라, 설사 진실을 말하더라도 합동수사본부의 요구에 합당하지 않으면 모진 고문과 폭력만이 난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진술서의 진실공방은 지금 시점에서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필자는 여기서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진술서 내용의 진실공방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데 초점을 맞추고 싶다.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논란의 핵심은 1980년 ‘서울역 회군’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두 사람이 이념적으로 전혀 다른 방향의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에서 두 사람이 속해 있는 진영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고 있는 노이즈마케팅이 아닐까 한다.

특히 요즘 벌어지고 있는 공안검사출신의 황교안 자한당 대표가 좌파독재와 헌법수호를 들먹이며 국민을 상대로 대권운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진보진영에 대한 거짓논란을 불러일으켜서 도덕성에 타격을 가하여 내년 총선에서 황 대표로부터 관심을 갖게 해보려는 심 의원의 전략이 숨어 있다고 보여 진다.

다만 1980년 이후 지금까지 두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의 문제 역시 매우 중요해 보인다. 그러한 관점에서 역사에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5.18광주민중항쟁의 당사자로서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시 1980년 5월 15일에 있었던 ‘서울역 회군’ 이후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의 흐름을 보면 전두환을 위시한 합동수사본부의 치밀한 집권전략의 일환으로 ‘서울역 회군’이 이루어졌을 개연성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이 ‘서울역 회군’ 이틀 후, 5월 17일 자정을 기하여 전두환 등 신군부는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완결판을 만들기 위한 마지막 단계로 김대중의 정치적 고향인 광주를 선택지로 한 대규모 광주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서울역 회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리라 짐작케 한다.

더욱 의구심이 드는 것은 심 의원의 주장대로 “제가 체포되기 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은 전 피고인의 자백으로 (혐의 입증이) 완성돼 있었다”거나, “저는 김 전 대통령의 공소장에도 나오지 않고 전 피고인 증거목록, 다른 피고인들의 공소사실 입증 증거, 증인란에도 나오지 않는다”며, “103쪽에 이르는 증거 목록에도 나오지 않는 본 의원이 김 전 대통령의 사형 선고나 다른 피고인들의 중형 선고에 영향을 줬다는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는 심 의원의 주장이야말로 의문투성이다.

당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은 이미 합수부의 각본에 의한 것인데도 당시 ‘서울의 봄’ 학생시위의 핵심이었던 서울대 총학생회장인 심 의원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모든 기록에서 빠져 있었다는 믿기지 않은 사실이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요인 중의 하나이고, 이후 전두환 시절부터 노태우 시절까지 MBC의 기자를 거쳐 군사독재 정당의 후예인 민자당 국회의원으로 출발하여 국회부의장까지 화려한 이력은 당시 ‘서울역 회군’에 따른 보상이 아니었을까 의구심이 드는 두 번째 이유이다.

한편, 유 이사장의 경우도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가져오고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의 장을 열어낸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서는 심 의원의 변절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본다. 적어도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진보진영의 유력한 대선주자로서 정권교체와 가장 근접해 있던 김대중 총재를 향해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거나 대통령 시절에 유 이사장이 한 발언을 복기해 보면 상상할 수 없는 악의적인 영남패권주의 행태의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39년 전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두 사람 중 심 의원은 변절로 민주주의를 말살한 세력에 빌붙어 자신을 위한 삶에 충실했다면 유 이사장은 시대정신에 비교적 충실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39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의 진술서 진실공방은 두 사람의 노이즈마케팅이요, 견강부회라고 얘기해 주고 싶을 따름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