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척 없는 준말
얼척 없는 준말
  • 문틈 시인
  • 승인 2019.05.0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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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신문을 읽을 때 새로 나온 말들의 뜻을 몰라 애를 먹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이다. “세상에 없던 신박한(신기하면서도 참신한 경우를 말하는 신조어) 기술이 담겨 있었다.”

괄호 안에 뜻이 새겨져 있지만 어떻게 해서 ‘신박한’이 신기하면서도 참신하다는 뜻을 갖게 되었을까. 인터넷에서 정확한 뜻을 찾아본다. 안 나와 있다. 이제는 준말의 뜻을 찾는 일도 버겁다. 알지 못하는 새로운 말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외래어는 탈북자들에게만 아니라 대다수 한국인들에게도 반은 알고 반은 모르는 상태로 넘어간다. 외래어도 큰 문제이지만 대유행 중인 생경한 준말은 정말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다가온다.

그런 말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요즘 생산되고 있는 낯선 말들은 미처 우리가 그 뜻을 알기도 전에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준말들이 팝콘처럼 쏟아져 나오는 통에 이제는 말에 치여 뜻을 모른 채 지내기 일쑤다.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좋못사(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남아공(남아서 공부나 해), 우유남(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남자).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다).

공장에서 말들이 생산되는 양 무한정 출하되고 있다. 처음에는 뭐랄까, 신선감도 있고, 재치도 있어 관심을 끌었지만 그 말의 소통성이 약하고 제한적인 데다 일방적이어서 금방 질리고 만다.

“얼척 없구나.” 전라도 출신 아버지가 하는 말을 못알아 듣고 딸이 “얼척이 무슨 준말이어요?”하고 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남도의 아름다운 말을 모른 딸. 우리는 지금 이런 준말시대를 살고 있다.

유통되는 준말들을 알기 위해 따로 공부를 해야 할 판이다. 그 말들이 기이하고 눈에 뜨인다싶으면 대중매체에서 재빨리 가져다 쓴다. 자극적이고 기괴한 말들을 여과 없이. 처음엔 소셜네트워크 같은 데서 어느 개인이 말을 지어내 쓰고 그것이 큰 반향을 일으켜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말의 생산, 유통, 소비 과정이 공동체의 공감이나 동의도 없이 멋대로 되고 있어 준말과 신조어를 처음 대하는 사람은 무슨 뜻인지 알 길이 없다.

예를 들면 내가 ‘광주는 민주주의 본산’이라는 말을 ‘광민본’이라는 준말로 만들어 써서 유통시킨다고 하자. 여러 사람이 따라 써주면 그것으로 그 말이 인터넷에서 대중매체로, 방송으로, 퍼져나가 새로운 말로 등장한다.

그런데 빠른 시간 내에 널리 유통시키려면 준말이 기왕에 알려진 단어라면 더 빠르게 퍼진다. 가령 ‘광주는 나의 사랑’이라는 말을 준말로 ‘광나사’라고 썼다고 하면, 광나사가 마치 빛나는 나사 같은 의미를 곁가지로 가지고 있어 기억하기 쉽고 쓰기도 수월해진다.

이런 식으로 새 말들이 마구 만들어져 나와 일상어를 압도할 지경이다. 신조어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인싸(각광받는 친구), 아싸(겉도는 친구), 노잼(재미가 없는 것), 국뽕(애국적인 주제의 영화)처럼.

언어는 공통어 개념으로, 즉 표준말로 쓰여져야 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소통하는데 무리가 없는 범위 안에서 생산, 유통되는 것이 옳겠다. 요즘 대유행 중인 새 말들은 그런 소통력이 거의 없이 특정한 계층, 집단들 사이에서 은어처럼 쓰여지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그런 정체불명의 말들을 대중매체인 신문, 방송이 마구잡이로 가져다 공인한다는 데 있다. 적어도 언론에서만큼은 준말 사용에 자제해 주었으면 싶다. 하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경박한 시대를 탓해야 할는지 모르겠다.

바람직하기로 쓰는 말이란 그 자체로 온전히 뜻이 담겨 있어야 한다. 가령 단어를 쓰고 그 말뜻을 따로 괄호 안에 넣는다든지, 앞서의 경우처럼 준말을 쓰고 그 뜻풀이를 따로 해놓는다든지 하는 것은 말의 본령에서 어긋난다. 심지어 이제는 ㄷㅎㅁㄱ처럼 초성만을 쓰는 단어도 등장한다.

준말, 신조어의 등장은 말의 경제성, 속도를 요구하는 자연스런 언어활동에 따라 생기는 것이므로 무조건 탓할 일만은 아니다. 군이나 학생과 같은 집단에서만 통용되는 은어는 그 집단 안에서 쓰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지만 일반인의 언어생활에서 무데뽀로 만들어진 준말, 신조어의 사용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한글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지 않은가. 언어생활이 흐트러져 한글이 망가질까 저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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