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기행(11) 메이지 신궁에서⑩ 메이지 헌법(1)
도쿄기행(11) 메이지 신궁에서⑩ 메이지 헌법(1)
  •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 승인 2019.04.2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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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3월 14일 이토 히로부미(1841~1909)가 인솔한 ‘유럽헌법조사단’이 요코하마 항을 출발했다. 이토를 포함한 10명은 5월 2일에 이탈리아 나폴리 항에 도착하여 5월 16일에 독일 베를린으로 향했다. 여기에서 프로이센 헌법학자 루돌프 그나이스트와 면담 후 5월 25일에서 7월 29일 사이에 그나이스트의 제자 알베르트 모쎄에게서 헌법관련 강의를 들었다.

조사단은 8월 8일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서 보수적 사회정책론을 주장한 로렌츠 폰 슈타인을 만났다. 이윽고 이토 일행은 파리에 잠시 머문 후 다시 빈으로 돌아와서 9월 18일에서 10월 31일까지 슈타인의 강의를 들었는데 보통선거제와 정당정치의 폐해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어서 조사단은 베를린에서 11월 14일에서 1883년 2월 9일까지 모쎄의 강의를 들었다. 3월에는 런던에 도착해 5월까지 머물렀으며, 6월 26일에 나폴리를 출발하여 8월 3일 요코하마에 귀향했다. 1년 5개월 만이었다.

이토는 유럽 현지조사를 통해서 프러시아 헌법이 일본에 가장 적합하다고 보았다. 반면에 영국이나 프랑스의 공화제 민주주의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고 생각했다. 천황주권을 강화해야 대국굴기·부국강병이 된다고 본 것이다.

이토는 헌법 제정을 위한 준비로써 각종 제도의 개혁부터 단행했다. 먼저 1884년 7월에 화족령을 제정하여 사족 출신의 메이지 공신들을 화족에 포함시켰다. 화족을 중심으로 한 귀족원(貴族院)에서 국민이 선출한 중의원(衆議院)을 견제해야 한다는 정치적 포석이었다. 화족에게는 공(公)·후(侯)·백(伯)·자(子)·남(男) 등 5등급의 작위가 세습적으로 수여되었다.

1885년 12월에는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내각제도가 발족되었다. 총리대신이 내각을 주도하며 각 성의 대신을 통제해 정무의 통일성과 능률을 강화하도록 했고, 각 성은 외무·내무·대장·육군·해군·사법·문부·농상무·체신 등으로 이루어졌다. 초대 총리대신은 하급 무사출신에 불과하였던 이토 히로부미가 발탁되었고 각 성의 대신은 사쓰마·조슈 출신이 거의 차지하였다. 이어서 1886년에는 관리임용시험을 제도화했고, 관리 복무규정도 정해졌다. 아울러 궁내성을 내각에서 분리했다. 황실과 정부를 명확히 구분한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1886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헌법 초안의 기초 작업을 진행했다. 초안 작성에는 이노우에 고와시, 이토 미요지, 가네코 켄타로 등이 참여했다. 정부의 법률 고문인 독일인 뢰슬러와 1886년에 헌법 관련 법률 고문으로 초빙된 독일인 모쎄가 법률 자문을 하였다.

헌법 기초 작업을 주도한 이노우에 고와시는 1887년 초에 갑안, 을안을 작성했으며, 뢰슬러의 「일본제국 헌법 초안」도 탈고되었다.

1887년 6~7월 중에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고와시, 이토 미요지, 가네코 켄타로 등은 가나자와 현 나쓰시마(夏島, 요코스카시)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의 별장에서 헌법 초안을 작성했다.

한편, 이토는 헌법 심의에 집중하기 위해 1888년에 총리 직에서 물러나 추밀원 의장이 되었다. 1888년 4월에 완성된 헌법 초안은 헌법 심의를 위해 설치된 천황의 고문 기관인 추밀원에서 비밀리에 심의가 진행되었고 메이지 천황도 심의에 모두 참석하였다.

메이지 헌법 발포식
메이지 헌법 발포식

1889년 2월 11일에 37세의 메이지 천황은 내각 총리대신에게 수여하는 형식으로 「대일본제국헌법」(일명 메이지헌법)을 공포하였다. 천황이 공포하는 형식을 취한 흠정헌법이었다.

이날 메이지 천황은 이토 히로부미의 그간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이토에게 최고의 훈장을 내렸다. 그리고 이토가 1909년에 죽을 때까지 천황의 신뢰는 계속되었다.

메이지 헌법이 공포된 날, 일본은 나라 전체가 축하로 들뜬 분위기였다. 의례용 양복이나 모자, 구두 주문이 쇄도했고 일장기는 동이 날 정도였다. 숙박업, 마차영업, 요리 집은 '헌법 특수'로 큰 재미를 봤다.

한편, 해외에선 '헌법 내용도 모르고 열광하는 일본인들이 우스꽝스럽다'고 비꼬기도 했다. 실제로 메이지 헌법은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되었다. 국민들은 그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다.

(참고문헌)

o 구태훈 지음, 일본제국 일어나다. 재팬리서치 21, 2010

o 함동주 지음, 천황제 근대국가의 탄생, 창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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