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그 영욕(榮辱)에 대하여
독립운동, 그 영욕(榮辱)에 대하여
  • 이승훈 논설위원/정치학박사
  • 승인 2019.04.2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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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논설위원/정치학박사
이승훈 논설위원/정치학박사

최근 카자흐스탄에서 계봉우, 황운정 독립지사와 배우자 두 분의 유해가 대통령 전용기에 실려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현지 봉환식에서 “네 분을 모시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임무이며 독립운동을 완성하는 일이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영광”이라고 밝혔다. 지당한 말씀이다.

나라 잃은 슬픔에 비분강개하여 독립을 위해 만주로, 연해주로 떠난 우리 독립지사들의 비화(祕話)들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삶의 터전을 빼앗긴 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식솔을 거느리고 고국을 떠난 동포들도 부지기수였다. 당시 조국을 떠난 동포의 후손들이 연해주를 비롯해 중앙아시아에 ‘고려인’이라는 이름으로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 많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당시 식자층과 부유층 일부는 국권상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친일부역을 통해 호의호식하며 재산을 증식하고 대대로 부를 누려왔다. 하지만 독립운동가들은 나라를 되찾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로 이국에서 동포를 규합하여 일제에 항거하는 등 온갖 난관과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독립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희생하셨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주 (사)재외한인학회 일원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과 우스리스크를 방문하여 독립혼이 담겨있는 역사의 현장들을 둘러보고 3~4세 후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등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먼저 블라디보스톡 시내에 있는 ‘신한촌 기념비’를 찾았다. 이곳은 해외한민족연구소가 1999년 건립하였는데 지금 그 주변에는 당시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안내원에 따르면 한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860년대 후반부터라고 하며 기근과 수탈을 피해 조국을 떠나온 이들이 먼저 자리 잡은 곳이라 한다. 신한촌은 연해주 한인 사회를 대표했던 곳으로서 국외 독립운동가들의 집결지이기도 했다.

두 번째 방문한 곳은 블라디보스톡 역에서 기차로 한 시간 가량 걸리는 ‘라즈돌리노예역’이었다. 우리나라의 간이역 규모인데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약 18만 명의 연해주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수송됐던 시발역으로 바람이 세차게 불고 왕래인이 없을 정도로 삭막한 이곳에 지난 80여년전 이유도 모르고 끌려갔을 동포들의 면면이 떠올랐다. 일제를 피해 고향을 떠나왔는데 또다시 소련공산당에 의해 정처없이 떠나야만 하는 동포들 심정은 어땠을까? 아마도 둘 다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세 번째 방문한 곳은 연해주 제2의 도시인 우스리스크로 항일 독립운동 근거지였다.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이곳엔 ‘고려인 문화센터’가 들어섰다. 고려인 이주 1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2008년 건립된 문화센터에는 많은 자료들이 갖추어졌는데, 그 중에서 ‘항일 영웅 59인의 초상’이 뇌리 깊숙이 남는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홍범도 장군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항일 영웅들을 초상으로 모시고 전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아르촘시로 이동하여 러시아연해주 고려인협회(회장 박발렌찐)와 나호드카 고려인협회(회장 헤가이 그레고리), 러시아연방극동대 박캐세나 교수, 고려인 동포 등 약 20여명이 참석하여 학술회의를 진행하였다. 특히 동포들은 남북교류에 큰 관심을 보였으며 통일을 이루어 남과 북, 연해주 고려인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기를 염원했다. 아울러 젊은 대학생들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을 토로했는데 공감하는 바 컸으며, 그들과 함께 동화하여 국민의 일원으로 성장․발전하기를 희망했다.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은 오직 나라를 되찾고 국권이 회복되는 것을 최고의 목표이자 선으로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한 몸 희생되는 것을 영광으로, 그리고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때문에 김구 선생은 “우리나라가 독립된다면 독립된 나라의 문지기가 되어도 좋다”며 해방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독립운동가 중 특정인에 대해 일부 정치권과 수구 언론이 시대역행적인 언사를 동원하여 좌파, 빨갱이로 매도하며 서훈을 방해, 음해하는 치졸한 행위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희생하신 독립영웅을 빛바랜 이념의 잣대로 욕보이는 만행을 그만두길 바란다. “해방 후 반민특위 때문에 국민이 분열됐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독립영웅들의 고혼(孤魂)이 안식하지 못하고 저 하늘에서 맴돌고 있음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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