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22) 연암억선형(燕巖憶先兄)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22) 연암억선형(燕巖憶先兄)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4.23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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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 연암협에서 돌아가신 형님을 생각하면서

울컥 치미는 충동 속에 부모님이 뵙고 싶어진다. 살아 계실 때 다 하지 못한 효도라고 생각된다면 돌아가신 후에는 더욱 사무쳐 보고 싶은 생각이 생길 것이다. 아버님 얼굴을 꼭 빼닮은 형이나 아우가 있다면 얼굴을 뵐 때마다 살아 계신 부모님과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형님을 마치 부모님처럼 생각하며 살았던 아우 입장에서야 더욱 어찌하겠는가. 부모님 꼭 빼닮은 형님이 돌아가시자 보고 싶어 몸부림치는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燕巖憶先兄(연암억선형) / 연암 박지원

우리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

선친이 생각나면 우리 형님 쳐다봤지

냇물 속 두건 쓴 얼굴 보고픔을 달래야지.

我兄顔髮曾誰似      每憶先君看我兄

아형안발증수사      매억선군간아형

今日思兄何處見      自將巾袂映溪行

금일사형하처견      자장건몌영계행

 

황해도 금천 연암협에서 돌아가신 형님을 생각하면서(燕巖憶先兄) 쓴 칠언절구다. 작자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우리 형님 얼굴 수염은 누구를 닮으셨던고 /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나면 늘 형님을 쳐다봤었지 //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디에서 볼 것인가 / 두건 쓰고 옷 입고 나가 냇물에 비친 내 얼굴 봐야겠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연암협에서 형님을 생각하며]로 번역된다. 닮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한 구석엔가 닮은 데가 있는 것이 형제다. 하물며 부모님에서랴. 살아생전에 극진하게 효도하지 못했던 자식은 부모님 돌아가시면 더 그랬다. ‘부모공경 형제우애(父母恭敬,兄弟友愛)’라는 동양적 효 관념사상이 우리의 피 속에 맥맥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도 그랬던 모양이다. 형님 수염이 돌아가신 아버님을 꼭 빼 닮았다고 했다. 선친(先君)의 수염을 꼭 빼닮은 형님 얼굴을 보면 부모님을 뵙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발가락이 닮았다고 했듯이 부모형제는 어딘가 무엇인가 꼭 빼닮는다는 것이 우리들의 관념이고 전통이었다.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도도한 맥박 속에 효도와 우애 정신이 맥맥하게 흐른다.

화자에겐 형님이 돌아가신 입장에서 다른 방법이 없다. 오직 단 한 가지는 형님처럼 의관을 정제하고 냇가에 나가 냇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면서 형님 뵙듯이 하는 방법이라고. 그렇게 나마 해서 형님 뵙듯이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이른바 대리만족이다. 냇물 속에 비춰진 자기 얼굴을 통해 형님을 보겠다는 뜻이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형님 수염 누구 닮아 부친 생각 형님 봤지, 형님 떠나 누굴 볼까 물에 비친 내 얼굴을’이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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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이다. 박제가, 유득공 등은 그의 문인이 되었다. 또한 홍대용, 이덕무, 정철조 등과도 만나 ‘이용후생’에 대하여 자주 토론하였으며 이 무렵 유득공, 이덕무 등과 서부지방을 여행하기도 했다.

【한자와 어구】

我兄: 나의 형님. 顔: 얼굴. 髮: 수염. 曾: 일찍이. 誰: 누구. 似: 유사하다. 每: ∼마다. 憶: 생각하다. 先君: 남에게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를 이르는 말. 看: 바라보다. // 今日: 이제. 思: 생각하다. 兄: 형. 何處: 어디. 見: 보다. 自: 스스로. 將: 장차. 巾: 두건. 袂: 소매. 映: 비치다. 溪: 시내. 行: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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