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이승훈 논설위원/정치학박사
  • 승인 2019.04.11 10: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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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논설위원/정치학박사
이승훈 논설위원/정치학박사

역사는 때로 격랑 속에서도 도도히, 그리고 면면히 흘러가며 시대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관련자를 징치(懲治)하도록 투명하고 객관적 사실을 제공한다. 당대에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함으로써 민심을 호도할 수 있을지언정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굴절되고 감춰진 사실들은 반드시 밝혀져 만인에게 알려지는 것이 통념이 되었다. 또한 역사를 배우는 진정한 의미는 과거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똑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교훈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지난 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거행된 ‘제71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전국을 대표하는 각 세대 국민 6명이 무대에 올라 4.3을 언급했는데, 특히 서울에서 온 여고생의 한 마디가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수업시간에 ‘순이삼촌’을 읽었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오면서 4.3을 더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놀라웠고 미안했고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국민들이 4.3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어서 생존자를 대표하여 대학생 손녀가 무대에 올라 할머니의 당시부터 지금까지 통한의 삶을 얘기할 때, 할머니는 오열했고 내빈석과 주변은 숙연함과 함께 곳곳에 흐느낌이 이어졌다. 도대체 71년 전에 일어난 4.3이 무엇이길래 이날 제주는 소복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을까?

필자는 간략하게나마 그간 감춰지고 불온시 되고 금기시 되었던 제주 4.3의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독자를 비롯한 국민들이 71년 전 일어난 국가공권력이 자행한 학살 만행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4.3의 진실은 너무나 명료하다, 단선(1948년 5월, 남한만의 총선)과 단정(미군정과 이승만 일파들이 주장한 단독정부)을 반대한 제주도민들이 불의한 국가권력에 온 몸으로 맞선 민중항쟁이다. 이 과정에서 미군정청의 경찰과 조선경비대, 서북청년단들은 젖먹이, 어린아이, 임산부, 노인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약 3만 명의 무고한 도민들을 좌익, 빨갱이의 누명을 씌워 학살한 천인공노할 만행을 밝히려한다.

4.3항쟁의 시발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7년 3월 1일 제주북국민학교에서 ‘3.1절 기념 제주도대회’를 마친 약3만 명의 도민들은 “3.1정신으로 온전한 통일과 온전한 독립을 쟁취하자”고 외치면서 거리행진을 하던 중 제지하던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어 중상을 입으면서 시작되었다. 경찰은 이를 무시하고 지나치자 성난 군중들은 경찰에 항의하며 돌을 던졌고 관덕정 앞에 다다르자 미군정청 경찰은 시위대에 발포하여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이것이 4.3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3.1절 발포 후 제주도청을 시발로 관공서, 은행, 회사, 학교 등 156개 단체가 총파업에 들어갔고, 현직 경찰관까지 동참하여 규모는 점점 커지는 양상을 띠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미군정청의 경무부장 조병옥이 도민학살의 원흉이라는 사실에 깊은 충격과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그는 경무부장이 되면서 친일경찰 출신들을 대거 기용했으며 파업과 관련하여 3월 19일 담화를 발표하였는데 “경찰의 발포는 정당방위였고 북조선의 통모로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규정하여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가 훗날, 1960년에 모 정당의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제주 4.3항쟁은 1947년 3월 1일 발포를 시발로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금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 동안 계속되어 해방 이후 국가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최대의 민간인 학살사건으로 기록되었다.

그동안 기성세대들은 제주에서, 학교에서, 이 사회에서 4.3을 언급할 수 없어 침묵했고 발설한 작가는 기관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는 등 반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침묵을 강요당해야만 했다. 다행인 것은 역사가 발전하듯 김대중 정부 시절 4.3특별법이 제정되었고 노무현 정부 때는 현직 대통령이 제주를 방문하여 도민과 희생자 유족들에게 사죄함으로써 응어리들이 조금씩 풀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아직 미흡하지만 진일보한 것은 지난 주, 국방부와 경찰책임자가 희생자 유족들에게 사과했고 유감을 표했다.

하지만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들이 놓여 있다. 지금 국회에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제주4.3특별법)’이 계류 중인데 조속히 법이 통과되어 피해자인 희생자․유족에 대한 배․보상과 명예회복, 그리고 군사법원에서 자행된 날조된 판결의 무효가 선언되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의 관심을 촉구하면서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말씀하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경구를 기억하며 제주4.3의 씻을 수 없는 아픔과 상처가 평화와 인권의 섬 제주에서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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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는 5.18 광주 침투한 북한 특수군들이 영웅대접을 받는다고 합니다 진짜 대한민국 영웅은 누구인지 국민은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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