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20) 독소(獨笑)②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20) 독소(獨笑)②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4.1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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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어찌 그리 바보인지

다산은 학문 사상가였지 결코 시인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조선 사회가 사상가와 시인을 따로 구분 짓지는 않았다. 문학을 하는 사람이 역사에 통철한 눈을 가졌고, 역사에 밝으면 철학까지도 손에 쥐는 문사철(文史哲)의 조화와 넘나듦이 학문의 기저가 되었다. 그래서 다산도 마찬가지였겠다. 통철한 학문은 예리한 문장력 문학사상으로 이어져 독소와 같은 시문을 썼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러한 상상력에 의해 쓰여진 오언고시풍으로 읊었던 둘째수를 번안해 본다.

 

獨笑(독소)[2] / 다산 정약용

집안이 완전하게 복 갖춘 집 드물구나

아비 절약 아들 방탕 상도가 쇠퇴하고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 쪽은 바보이니.

家室少完福      至道常陵遲

가실소완복      지도상능지

翁嗇子每蕩      婦慧郎必癡

옹색자매탕      부혜낭필치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어찌 그리 바보인지(獨笑2)로 번역해본 장율(長律)인 두 번째 구 오언배율이다. 작자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한 집안에 완전하게 복을 갖춘 집은 드물고 / 지극한 도는 늘 쇠퇴하기 마련이라네 / 아비가 알뜰히 절약하면 아들은 방탕하고 /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저리 바보니]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혼자 호탕하게 웃다2]로 번역된다. 다산실학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는 자신의 인격수양으로 시작하는 학문이어야 된다. 둘째는 주자의 성리학을 비판하고, 공자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원형 정신이다. 셋째는 실학의 핵심인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학문이어야 한다. 이런 학문적 바탕이 ‘실학의 꽃’이란 견해가 많다.

시인은 멀리 있는 원리를 가까운 곳에서 찾아내려는 자기 혜안을 발견하는 듯 또 다른 독소에 짓궂은 냉소를 보낸다. ‘독소(獨笑)’는 완전하게 복을 갖춘 집은 드물고, 지극한 도는 늘 쇠퇴하기 마련이라고 강조한다. 어쩌면 지극히 맞는 말이다. 인간 조화는 늘 파도와 같은 것이라고 했으니…

그러면서 화자는 아버지가 절약하면 아들은 방탕하고,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어리석다는 상반된 현상의 관찰이다. 느낌과 표현은 서로 다를 수 있는데 이를 과감하게 표현했다. 후구로 이어지는 시인의 상상력은 [보름달 뜨면 구름 자주 끼고 /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대지 // 세상일이란 모두 이런 거야 / 나 홀로 웃는 까닭 아는 이 없을걸]이라고 했다. 인간관계와 자연현상과도 상관을 맺는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한 집안에 복 못 갖추니 쇠퇴하기 마련이네, 아비 절약 아들 방탕 아내 지혜 남편 바보’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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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이다. 가주서를 거쳐 검열이 되었으나, 가톨릭교인이라 하여 같은 남인인 공서파의 탄핵을 받고 해미에 유배되었다가, 10일 만에 풀려나와 지평으로 등용되었다. 1792년 수찬을 지냈다.

【한자와 어구】

家室: 집안. 少: 작다. 드물다. 完福: 완전하게 복을 갖추다. 至道: 지극한 도의. 常: 항상. 늘상. 陵遲: 크게 더디다. // 翁嗇: 아버지 절약하다. 늙은이가 절약하다. 子每蕩: 자식을 늘 방탕하다. 婦慧: 아내가 슬기롭다. 아내가 야무지다. 郎必癡: 신랑은 반드시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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