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혁명을 위한 홍위병이 필요하다
문화혁명을 위한 홍위병이 필요하다
  • 김호균
  • 승인 2002.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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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폴리티콘politikon(정치적 동물)'이라 표현했다. 폴리스를 구성하고 폴리스에 사는 사람, 즉 본질적으로 정치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의미이다.

정치라는 것이 결국 사람살이에 관한 합의이고 논의과정임을 생각해보면 모든 인간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쉽게 수긍이 간다. 공동체를 유지해나가는 방식, 공동의 과제, 공동의 필요를 충족시켜나가는 다양한 방식, 공동의 선을 이뤄나가는 방식, 이 모든 것이 바로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의 독점이 오랜 동안 지속되어온 사회에서는 인간의 본질적 속성 가운데 하나인 이 정치적 동물 노릇을 아무나 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정치적 동물로서의 기능은 그야말로 정치권력을 쥐기 위한 야수들의 특권쯤으로 자리를 하게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스스로 정치적 동물이기를 포기하는 꼴이 되고 만다. 공동체의 삶에 대한 합의에서 제외되고, 정치적 동물을 자처하는 이들에게 혐오감마저 갖게된다. 자연스러운 기능을 박탈당하는 꼴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되고 발전된 민주주의 제도 역시 운영의 성숙 정도에 따라서 '정치적 동물'들이 소수에 그치는가 다수가 되는가가 판가름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올 봄 정치의 계절을 새롭게 변화시킨 '국민참여경선' 혹은 '시민참여경선'은 정치의 성역을 없애고, 정치의 영역을 확장시킨 새로운 실험임에 분명하다. 물론 지방선거에서 이 제도가 얼마나 합리적으로 운용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그 논의의 핵심도 제도의 발전을 위한 보완책 강구이지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와중에 한나라당 박원웅의원이 한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인 노사모를 두고 '사이비 종교집단 비슷한 것' '정치 지향적인 룸펜', '홍위병' 등등의 발언을 일삼아 문제가 되고 있다. 명계남씨를 비롯한 노사모 관련자들은 한나라당사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면서 박의원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일전에도 작가 이문열이 안티조선운동을 하는 이들을 '홍위병'으로 표현한 적이 있다. 그러고보니 한국 사회에서는 성역에 대항하는 이들이 한번쯤 듣게되는 말이 바로 이 '홍위병'이라는 용어가 아닐 듯싶다. 재미난 것은 정치개혁운동이나 언론개혁운동을 '홍위병' 쯤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의식 수준이다. 대가성 없는 정치인 지지운동도 이해하기가 어렵고, 정권과의 뒷거래 없는 언론개혁운동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원웅 의원이나 이문열씨의 홍위병 발언을 지켜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시대가 안고있는 여러 문제들을 풀려면 이같은 '홍위병'들이 더 많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다. 자기 생활을 해나가면서 끊임없이 세상사에 개입하고 간섭하는 겁 없는 홍위병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내몰라라 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로 안고갈 수 있는 홍위병들, 자신의 영역을 세상에 열어두고 함께 가려는 홍위병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문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혈세를 낭비하는 전시행정과 문화복지를 위한 진짜 문화행정을 구별할 줄 아는 홍위병들이 필요하다. 문화의 독점이나 성역을 허물고, 스스로 문화의 주체가 되고 문화창조자가 될 줄 아는 홍위병들이 필요하다. 마구잡이 개발에 맞서 지역의 문화자원을 지켜내는 행동파 홍위병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야하고, 문화적 주체성과 다양성을 지닌 젊은 홍위병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우리 시대의 문화적 토대가 너무 빈약하고 왜곡되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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