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노역 피해 집단소송 문의 쇄도
일제 강제노역 피해 집단소송 문의 쇄도
  • 조선호 객원기자
  • 승인 2019.03.2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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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불명된 아버지 아직 사망신고조차 못해” 가슴시린 사연들도
20일 광주전남피해자 35명 문의...25일부터 광주시청에서 접수

광주전남지역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들을 규합해, 일본 전범기업을 대상으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참여 방법을 묻는 문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19일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25일부터 4월 5일까지 2주간 신청 접수를 받아 일본기업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아직 본격적인 신청 절차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언론을 통해 소식을 들은 피해자와 유족들의 문의가 20일 하루만에 35건에 이르는 등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사무실로 하루 종일 소송 참여방법을 타진하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이상복(광주 용봉동) 씨는 “아버지가 1941년 북해도 탄광에 끌려갔는데 당시 집으로 보낸 사진과 사진 뒷면에 일본 현지 주소가 적혀있었다”며 “돌아와서도 계속 위가 안 좋고 고생만 하시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이옥섭(전남 담양) 씨는 “아버지가 1940년 북해도 해저 지하탄광에서 3년 동안 탄을 캐다 12월 달에야 귀국했다고 하더라”며 “지하 1천 미터까지 내려가 팬티만 입고 탄을 캐느라 생고생을 했다는 얘기를 어렸을 때부터 들었다”고 회고했다.

강길호(광주) 씨는 “아버지가 구타를 많이 당해 해방 후 돌아와서도 대변을 잘 못 볼 정도로 고생했지만, 어려웠던 시절이라 병원치료도 제대로 못하고 오랫동안 한방 침으로 견디시다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워했다.

광주 오치동에 사는 김복수(76) 씨는 “아버지가 해방 뒤 리어카에 실려서 돌아 올 정도로 몸이 다 못 쓰게 돼 귀국했다”며 “아버지가 평생 병석에 계시다보니 학교 문턱이 어떻게 생긴 지도 모르고 배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돈이 문제가 아니다”며 “아버지가 아파 계시니 가정이 다 파탄돼 버려, 억울하게 살아 온 것이 서러워 소송에 참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서울에 사는 장명곤 씨는 장손인 큰아버지가 일본에 끌려가 현지에서 행방불명돼 소식도 없자 나중에 큰아버지 호적에 양자로 입적하게 된 기구한 가족 내력을 토로했다.

장 씨는 “큰아버지가 나름대로 고을에서 촉망도 받고 산속에서 아이들을 위해 공부를 가르치다 어느 날 갑자기 헌병한테 끌려 나간 뒤 소식이 끊어졌다”며 “여태 사망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행방불명자로 있다”고 말했다. 장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나중에라도 경제적으로 풀리면 아버지 사망신고도 하고 한이라도 풀어달라고 했던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의자 중에는 군인으로 끌려가 이번 소송에 합류하기 어렵거나, 미처 정부로부터 피해자 확인을 받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한 유족은 “아버지가 군인으로 끌려가 고생하다 오셨는데, 우리 같은 사람은 소송에 참여할 수 없느냐”고 아쉬워했고, 이상남 씨는 “아버지가 탄광에 끌려가 2년간 고생하다 와 일찍 돌아가셨는데, 바쁘게 살다보니 노무현 정부에서 피해자 신고를 받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이 밖에도 광주, 화순, 고흥, 여수, 영암 등 광주전남은 물론, 성남, 전주, 서울 등 광주전남지역에 연고를 둔 피해자 가족들의 소송 문의도 이어졌다. 또한 각 지역마다 이런 집단소송 추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부산에 살고 있는데 소송에 참여할 수 있느냐고 전화를 한 어느 피해자 유족은 ‘여러 사정상 광주전남 피해자들로 한정할 수밖에 없다’는 답변을 듣고, 긴 한숨과 함께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기도 했다.

한편, 민변광주전남지부와 시민모임은 광주시청 1층 민원실에 접수창구를 마련해 오는 25일부터 내달 5일까지 신청서류를 받는다.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집단 소송은 군인·군속 동원 피해자와 일본 기업을 상대로 별도 소송을 진행하는 원고는 제외한다.

소송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지원과’(02-2195-2300)로부터 강제동원 피해심의 결정통지서,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위로금 등 지급결정서 1통과,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를 1통씩 준비하면 된다. 문의는 전화(062-365-0815)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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