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16) 별인(別人)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16) 별인(別人)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3.1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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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왕손일랑 배우지는 마소

이별은 곧 슬픔이고 그리움이었다. 여자라는 신분 때문에 별리의 아픔은 더욱 그랬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그 때를 상상으로 비교해 보라. 어떤 명목이든 사랑하는 사람이 곁을 떠난다는 것은 다시 만날 기약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왕손’은 마치 ‘함흥차사’와 같은 뜻으로 비슷한 시기에 생성된 조어다. 임을 보내는 여인의 마음이 간절하게 젖어있고, 왕손처럼 부디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소망을 담아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別人(별인) / 소옥화

세모의 찬바람 속 저녁 해가 저무는데

임 보낸 천리 먼 곳 눈물 젖은 옷소매

봄 언덕 푸르기만 하니 왕손일랑 안돌아와.

歲暮風寒又夕暉      送君千里沾淚衣

세모풍한우석휘      송군천리첨루의

春堤芳草年年綠      莫學王孫去不歸

춘제방초년년녹      막학왕손거불귀

 

돌아오지 않는 왕손일랑 배우지는 마소(別人)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소옥화(小玉花:?~?)로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세모의 찬바람 속에 저녁 해는 뉘엿뉘엿 지는데 / 천리 먼 곳, 임을 보내니 눈물이 옷을 적시는구나 // 봄 언덕의 풀은 해마다 저리도 푸르기만 하는데 / 떠나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왕손일랑 배우지는 마소]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임과 이별하고]로 번역된다. 조선의 기녀들이 대체적으로 한시에 능통했던 것은 당대에 ‘내로라’하는 선비들과 교유하면서 스스럼없이 시를 익혔기 때문이다. 많은 시인들이 이 햇무리나 저녁노을을 두고 노래하여 익숙하게 보았던 모양이다.

시인은 세모에 멀리 떠난 임을 간절한 기원을 담아 기다리고 있다. 계절적인 직감에 이어 세모의 찬바람 속에 저녁 해는 뉘엿뉘엿 지는데, 천리 먼 곳, 임을 보내니 눈물이 옷을 적셨다고 했다. 임을 기다리는 간절한 염원이 깊은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었으리라. 찬바람이 으스스 부는 저녁에 천릿길을 보내려는 이별의 저녁을 아쉬워하는 애처로움이 보인다.

‘별리’는 역시 눈물이고 한을 쌓게 했다는 백의민족의 상징성을 그대로 대변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해마다 봄이 되면 새롭게 돋아나는 풀잎처럼 멀리 떠난 후 그렇게 돌아와야지 왕손(王孫)들처럼, 함흥차사들처럼 소식이 없거나 돌아오지 않는 그런 일일랑 배우지 말라는 화자의 한 마디 염원이다. 간곡한 바람을 전하는 조선 여심의 다른 면을 본다. 그녀들에게서 은근과 끈기를 여성들이 배웠던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해본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저녁 해는 뉘엿뉘엿 천리 먼 길 임을 보내, 봄 언덕에 풀 푸른데 왕손일랑 배우지 마소’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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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소옥화(小玉花:?~?)이다. 여류시인으로 거제도 남촌 출신의 기생이란 것만 알려질 뿐 생몰연대와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본인의 이름을 소옥화라고 하고 있는 소옥(小玉)은 ‘고대 전설 속에 나오는 선녀 이름’으로 자신을 선녀로 칭하는 귀염도 보인다.

【한자와 어구】

歲暮: 섣달 그믐날. 風寒: 바람이 차다. 夕暉: 저녁노을, ‘석조(夕照)’로도 쓰임. 送君: 임을 보내다. 千里: 천리 머나먼 길. 沾淚衣: 눈물이 옷을 적신다. // 春堤: 봄 언덕. 芳草: 풀. 年年綠: 해마다 푸르다. 莫學: 배우지 말라(금지사). 王孫: 왕씨의 성(고사에 의함). 去: 가다. 不歸: 돌아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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