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를 모시고
제사를 모시고
  • 문틈 시인
  • 승인 2019.03.0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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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는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를 맏이인 내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영정 사진도 모셔오고 고향 형제들도 먼 내 집으로 오기로 했다.

그동안 구순의 어머니가 중심이 되어 어머니집에서 제사를 모셔왔다. 어머니가 힘도 들고 석삼년이 지났으므로 내가 이어 맡기로 했다.

“밥하고 국하고 너희 먹는 대로 해라. 생선 좀 올려놓고.” 어머니는 간소하게 하라신다. 하지만 제사를 처음 모시는 터라 무척 긴장이 되고 신경이 쓰인다. 교자상과 그릇들을 구입하고 음식 장만에 들어갔다.

어머니가 해오시던 제사상을 참고로 해서, 인터넷을 참조하여 나름대로 모자람이 없도록 준비했다. 옛날 말에 제사 지내기가 어렵다고 하더니 정말 만만치 않았다.

특히나 아내는 기독교도인으로 친정 부모님 제사는 추도예배로 가름해온 터라 시댁 제사상 차리기는 처음이어서 무척 어려워하였다.

제사의 의미가 돌아가신 조상에 대한 추모라고 한다면 그 형식에 너무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단 제사상 차림이 시작되니 오랜 전통의 격식에서 한 가지라도 흐트러짐 없이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는가 보았다.

나는 소박하게, 간소하게 차렸으면 했으나 아내는 제삿날 한 달 전부터 이상하리만큼 신경을 곤두세웠다. 잘해야 한다는 맏며느리의 부담감이었을 것이다.

멧밥과 국, 생선, 나물, 전, 과일 등속을 마련하느라 부산을 떨고 격식대로 알맞은 자리에 이것저것 올려놓고 상차림을 했다. “동생아, 너 이 제사상 사진 찍어 어머니랑 형제들에게 보내라.”

마치 막내 동생이 제사 감찰반이라도 된 것처럼 홍보 부탁을 했다. 몸가짐을 바로 한 다음 나를 비롯하여 동생네 가족들이 차례대로 엄숙하게 재배를 올리고 술잔을 부어 세 번 돌리고 숟가락을 밥에 얹었다.

내가 어릴 적에 할머니 댁에 가면 제삿날 멥쌀을 됫박에 담아놓고 제사를 드린 다음 그 쌀을 들여다보고는 “네 할아버지가 새가 되어 오셨나보다. 요 보라, 여기 새 발자국이 보이지 않니.”

할머니가 진짜로 믿는 듯 그렇게 말씀하신 기억이 있다. 됫박 쌀에 아무런 태가 안 보이는데 할머니는 금방 새가 왔다 갔다고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때 사람은 저 세상에 가면 그렇게 각종 동물이 되어 제삿날 왔다 가는 것으로 알았다.

아마도 사람이 죽으면 지수화풍(地水火風) 본디 원소로 분해되어 다른 생명체의 원소가 된다는 과학적 원리를 옛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해석한 것이려니 한다.

제사상 머리에 모신 아버지의 영정 사진은 마치 금방이라도 부르면 대답하실 것처럼 생생해서 나도 모르게 “아버지, 저희 형제들을 늘 생각해주시고 하늘나라에서 편하게 지내십시오.”라고 입 밖으로 말이 나왔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추모하는 제사를 치르다 보니 나와 형제들이 홀로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핏줄로 이어져 있음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뿐 아니라 아버지 생시에 내가 부모님을 더 잘 공경하고 효도를 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마음 한 켠에 아려왔다.

‘아버님 날 나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그런 노래가 있었던 것 같다. 이 세상에 부모님의 은혜보다 더 큰 것이 있을까.

살아생전에 부모님께 공경하고 효도하라 옛 사람들이 말했거늘 다 하지 못한 마음에 자못 내 마음은 울적해지려 한다. 산다는 것은 면면히 이어온 핏줄을 지키고 끊임없이 이어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슴을 친다.

어머니는 언젠가 내게 말했다. “나 죽으면 이태만 제사를 지내고, 그 후엔 그만 두어라.” 어머니는 아버지보다는 냉정한 분이다. 벌써 전에 어머니는 아버지 산소 옆에 가묘까지 써놓았다.

어머니의 당부는 자식들을 성가시게 하지 않겠다는 말씀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당부를 지키지 못할 것 같다.

살아서도 저 세상에 가셔도 부모님은 나를 낳아준 부모님으로 늘 우리 곁에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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