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14) 입산:풍(入山:楓)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14) 입산:풍(入山:楓)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2.26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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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 또 겹친 산이 있음을 알지도 못했다네

선현들은 자연을 보면서 시문을 음영했다. 자연이 곧 시적 대상이요, 시제가 되었던 것이다. 구름 한 점을 보면서 시상을 떠 올렸고, 떨어지는 낙엽 한 잎을 보면서 덧없는 인생을 노래했다. 시를 짓는 방법에서도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발휘했다. 적절한 비유법에서는 탄성을 자아낸다. 은유나 환유에선 가슴을 후련하게 했으며, 적절한 시어의 선택은 두 무릎까지 치게 했다. 산에 들어가 단풍을 보면서 산 위에 산이 겹쳐 있음으로 읊었던 시 한수를 번안해 본다.

 

入山:楓(입산:풍) / 회현 조관빈

단풍길 지나다가 징검다리 걷노라면

저 하늘 흰 구름이 피어남 모르면서

산 위에 산이 있음을 알아보지 못했네.

丹楓千樹又萬樹      我行悠悠水石間

단풍천수우만수      아행유유수석간

不知天中自雲起      却疑山上又有山

부지천중자운기      각의산상우유산

 

산 위에 또 겹치는 산이 있음을 알지도 못했다네(入山<楓>)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회헌(晦軒) 조관빈(趙觀彬 :1691~1757)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단풍이 천 그루인지 만 그루인지 끝이 없고 / 내 발길은 한가롭게 물을 건너 돌길 위를 걷네 // 저 하늘에 흰 구름이 피어남을 알지도 못하고 / 산 위에 또 겹치는 산이 있음을 알지도 못했다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산에 들어가 단풍을 보다]로 번역된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면 방향감각을 잃어 자칫 앞뒤를 분간할 수 없다. 그래서 나침반은 너른 바다를 항해하면서도 필요하겠지만,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도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언뜻 보이는 해와 그림자를 보면서 방향감각을 짐작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이와 같은 시적배경을 담아 쓰여 진 작품으로 보인다.

시인은 산에 들어가서 단풍을 구경하면서 즐겼던 모양이다. 단풍이 천 그루인지 만 그루인지 끝이 없고, 내 발길은 한가롭게 물을 건너 돌길 위를 걷는다고 했다. 산을 걷다보면 계곡이 나오고, 계곡을 걷다보면 졸졸졸 흐르는 돌길도 건너게 된다. 무작정 자연과 벗하며 걷는다. 자연이 주는 천혜의 선물을 한 아름 가슴에 안게 된다.

화자는 늦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면서 사각사각 무언의 속삭임에 취한다. 하늘에 흰 구름이 피어남을 알지도 못하고, 산 위에 또 겹치는 산이 있음을 알지도 못했다고 했다. 저 높은 하늘에 흰 구름이 피어나는 줄도 알지 못하면서 속세를 잊고 자연과 대화하다보면 해 기우는 줄로 모른다는 시상이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단풍잎은 끝이 없고 물을 건너 돌길 위로, 흰구름 피어남 모르고 산이 있음도 모르네’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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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회헌(晦軒) 조관빈(趙觀彬:1691~1757)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1714년(숙종 40)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검열·수찬·전적을 지내고, 대간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가 이조참의에 기용, 1719년 승지가 되었다. 문집에 <회헌집>이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한자와 어구】

丹楓: 단풍. 千樹: 천 그루. 又: 또한. 萬樹: 만 그루. 我行: 내가 가는 길. 悠悠: 한가롭다. 水石間: 물을 건너서 돌길을 걷다. // 不知: 알지 못하겠다. 天中: 하늘 가운데. 自: 스스로. 雲起: 흰 구름이 일어나다. 피어나다. 却疑: 문득 의심하다. 山上: 산 위에. 又: 또. 有山: 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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