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13) 삼탄우음(三灘偶吟)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13) 삼탄우음(三灘偶吟)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2.2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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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원하노니 인간사 모두를 다 버리고 나서

신조어이겠지만 두 물이 합수하는 곳을 ‘두물머리’라고 부른다. 이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수한 물의 위치를 가리킨 말로 쓰인다. 작은 강줄기와 큰 강줄기가 합하는 곳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큰 강을 이루기 위해선 여러 지류에서 합수하는 물이 모여야 한다. 세 곳의 물이 합수한 곳도 있단다. 이곳을 삼탄이라 부르려 한다. 세 곳의 물이 합수한 곳에서 초연히 잡된 인간사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작은 배에 그냥 눕고 싶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三灘偶吟(삼탄우음) / 함계 정석달

드높은 가을하늘 한 조각의 달이 뜨니

그림자 천리 강에 저 멀리 흘러가는데

초연히 인간사 버려 작은 배에 눕는다.

秋天一片月      影入千江流

추천일편월      영입천강류

願棄人間事      超然臥小舟

원기인간사      초연와소주

 

내 원하노니 인간사 모두를 다 버리고 나서(三灘偶吟)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함계(涵溪) 정석달(鄭碩達:1660~1720)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가을 하늘 높은데 한 조각달이 두웅실 떠서 / 비슷한 그림자는 천리 강 밖으로 흘러들어만 가네 // 내 원하노니 인간사 모두를 다 버리고 / 초연히 작은 배에 누워서 삼탄의 즐거움만 생각하려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세 갈래 여울을 보고 우연히 읊음]로 번역된다. 세 갈레 물이 합수되는 곳에서 마음이 더없이 흡족했던 모양이다. 그것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큰 강을 끼는 곳이면 어디든지 지류가 있어 물은 만나게 되고 필연적으로 바다로 향하게 되어 있다.

시인은 아름다운 자연에 취해 있다. 가을 하늘이 맑게도 보이더니 한 조각 초승달이 둥그렇게 떠올랐다. 아마 그 달은 황진이가 읊었던 반달이었을 지도 모른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토끼가 반쯤 이상은 먹지나 않았을까? 여자들이 머리에 꼽는 비녀는 아니었을까? 그 맑은 가을 하늘에 천리쯤 흐르는 강줄기는 흘러간다고 음영하고 있다.

화자는 번뇌스러운 인간사를 다 버리고 초연히 이 가을 하늘을 보고 싶다고 했다. 원하노니 험난한 인간사 모두 버리고, 초연히 작은 배에 누워서 삼탄의 즐거움만 생각하고 싶다는 서회를 담았다. 때 묻지 않는 순수한 이 좋은 계절에 자연과 함께 살고 싶어 함을 시상으로 떠올리고 있다. 화자는 세상의 모든 시름을 다 떨쳐버리고 이제 초연히 살고 싶은 강한 충동감에 사로 잡혀 있었음을 알게 하는 상상이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조각달이 둥실 떠서 천리 강에 흘러가네, 인간사 모두 버리고 삼탄 즐거움 생각하리’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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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함계(涵溪) 정석달(鄭碩達:1660~1720)로 조선 후기의 학자이다. 정시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항상 이황을 사숙하여 이기론을 탐구하여 이현일‧조선장 등과 서신으로 상론하였다. <소학>, <가례>, <중용>, <맹자>, <논어>, <근사록>, <심경> 등을 더욱 탐독하였다.

【한자와 어구】

秋天: 가을 하늘. 一片月: 조각달, 한 조각의 달. 影: 그림자. 入: 들어가다, 들어오다. 千江: 천리 강, 멀리 흐르는 강. 流: 흐르다. // 願: 원하노니. 棄: 버리다. 人間事: 인간사, 인간 세상. 사람이 살아가는 일. 超然: 초연히, 그러함을 넘어서. 臥: 눕다. 小舟: 작은 배. 황진이는 [小栢舟]로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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