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12) 상국(霜菊)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12) 상국(霜菊)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2.1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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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집에서 채색 옷 입고 춤추는 중양절에

아무렴해도 역시 가을국화다. 온 나라가 잔치 분위기에 휩싸여 들떠 있는데 서리 맞은 국화가 그 분위기를 돋운다 했다. 중양절엔 높은 곳에 올라가 먼 곳을 바라보며 고향생각을 했다고 전한다. 신라시대부터 큰 명절로 정하여 잔치를 베풀어 군신이 즐거움을 같이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봄(3. 3)과 가을(9, 9) 2차례에 걸쳐 노인잔치를 베풀어 경로사상을 드높이는 동시에 조상께 차례를 지냈다. 술잔에 비친 사람들의 얼굴이 맑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霜菊(상국) / 남명 조식

찬 국화 만 송이 얇은 이슬 맺혔구나.

짙은 향기 많은 곳 뜰 앞의 한복판에

중양절 술잔 비쳐서 맑게 보인 그 얼굴

薄露疑寒菊萬鈴      活香多處最中庭

박로의한국만령      활향다처최중정

高堂綵舞重陽節      人面橫斜酒面淸

고당채무중양절      인면횡사주면청

 

높은 집에서 채색 옷 입고 춤추는 중양절(霜菊)에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자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찬 국화 만 송이에 얇은 이슬이 맺혔는데 / 짙은 향기가 가장 많은 곳은 뜰 한 복판이구나 / 높은 집에서 채색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좋은 철 중양절에 / 사람들의 얼굴이 술잔에 비스듬히 비쳐서 맑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서리 속에 핀 국화]로 번역된다. 시인이 생존했던 시기는 사화기로 일컬어질 정도로 사화가 자주 일어난 때로 훈척정치(勳戚政治)의 폐해가 극심했다. 그는 성년기에 2차례의 사화를 겪으면서 훈척정치의 폐해를 직접 경험했다. 이런 정치적 상황에서 그는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평생을 산림처사로 자처하면서 오로지 학문과 제자들 교육에만 힘썼다.

시인은 중양절의 정점에 서서 찬 국화에 이슬이 맺혀 있음을 본다. 찬 국화 만 송이에 얇은 이슬이 맺혔는데, 짙은 향기가 가장 많은 곳은 뜰 한복판이라는 주변 상황을 서회(舒懷)했다.

국화 향이 뜰 한 복판에 가득한 가운데 큰 명절에 친지들과 잔술을 돌리고 있다. 화자 또한 음력 9월 9일이 되면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중양절을 맞이하면서 고운 색동옷도 입었던 모양이다. 여러 사람이 모인 명절에 어찌 잔 술 돌리는 즐거움을 제외할 수 있으리.

그래서 마시려는 술잔 속에 참석한 사람들 얼굴이 비친다고 상상한다. 마시고 취하는 술잔 속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비쳤으니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따뜻함을 마신 것으로 상상했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찬 국화가 이슬에 맺혀 짙은 향기 한 복판에, 춤을 추는 중양절에 비낀 술잔 얼굴 가득’이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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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으로 조선 중기의 학자이다. 전생서 주부·단성현감·조지서 사지 등 여러 벼슬에 임명되었지만 모두 사퇴하였다. 단성현감 사직 때 올린 상소는 조정 신하들, 명종, 문정왕후에 대한 직선적인 표현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한자와 어구】

薄露疑: 이슬이 엉키었다. 寒菊: 찬 국화. 萬鈴: 만송이가 열렸다. 活香: 짙은 향기. 多處最: 가장 많다. 中庭: 뜰 한 복판이다. // 高堂: 높은 집. 綵舞: 채색옷을 입다. 重陽節: 중량절. 음력 9월 9일. 人面: 사람 얼굴. 橫斜: 비스듬히 빗기다. 酒面: 술잔에 술이 담겨 있는 면. 淸: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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